서오룡
徐五龍1911. 6. 1 ~ 1950. 10. 1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프롤레타리아과학연구소 조선총지국
포상 정보
- · 애족장(2018)
관련 사건
- · 대구격문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8) 1911년 6월 1일 경상북도 달성군(達城郡) 성북면(城北面, 현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山格洞)에서 아버지 서진태(徐鎭泰)의 슬하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이명은 서혁수(徐爀洙)·최용길(崔龍吉)이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대본철(大本徹)·대본혁수(大本爀洙)라는 창씨명을 사용하였다. 1926년 달성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 대구공립상업학교에 입학하였다. 1930년 12월 하순 대구(大邱) 동운정(東雲町) 소재 김홍렬(金洪烈)의 방에서 사사키 다카시(佐佐木隆)·이동우(李東雨)·김동욱(金東旭) 등과 함께 재동경프롤레타리아과학연구소가 발행하는 잡지 『프롤레타리아과학』에 따라 사회과학을 연구·보급하고 동지를 획득하기 위해 프롤레타리아과학연구소의 조선제일총지국을 조직하여 여러 차례 모임을 가졌다. 1931년 1월 21일 레닌기념일 전날 밤에 「빵을 위해 싸우자」·「자본가를 죽여라」라는 제목의 격문 약 60장을 대구 시내에 붙이거나 배포하였다. 같은 해 1월 하순과 4월 중 제국주의 교육제도의 본질을 폭로하고 대구상업학교 학생을 규합하여 동맹휴학을 이끌어 냈다. 이 일로 학교로부터 무기정학을 받았으나 3월 7일에 졸업하였다. 졸업 후 사사키와 함께 대구전보사(大邱電報社)에 입사하였다. 1931년 7월 7일 사사키, 세토(瀨戶口茂)와 함께 경상북도잠종업조합사무소에서 등사판으로 「프롤레타리아과학연구소 지국 뉴스」 제1호를 인쇄·반포하였다. 내용은 ‘식민지를 해방하라’, ‘소비에트러시아와 소비에트중국을 지키자’ 등이었다. 1931년 8월 25일 밤 기독교회 야학교에서 교사들에게 만보산사건(萬寶山事件)에 관해 “일본 관헌이 고의로 조선인과 중국인의 충돌을 일으켰는데, 조선 내의 보복 행위를 이용하여 민족의 대립 감정을 조장하였다. 이것은 중국과 조선, 일본 피압박 민중의 공동전선을 파괴하려는 시도”라고 폭로하였다. 그 해 9월 28일 같은 야학교에서 학생과 학부형·교사를 상대로 “노동자와 농민은 대은행·일본내각·총독·경찰관리·자본가·지주로부터 압박과 착취를 받는다”라는 내용의 강연을 하였다. 1931년 11월 10일 사사키와 함께 국체주의수양회(國體主義修養會)의 반동성을 폭로하고 단호한 투쟁을 촉구하는 등의 「지국 뉴스」 제2호와 부록 20부를 인쇄하였다. 이러한 활동 중 12월 4일 대구보병 80연대와 대구중학교·대구보통학교에 격문을 배포한 사건으로 동지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32년 12월 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출판법,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1934년 5월 대구형무소에서 풀려났다. 1936년 2월 ‘유림단(儒林團) 사건’ 동지였던 정수기(鄭守基)의 동지장(同志葬)을 거행한 것을 계기로 정운해(鄭雲海)·이동우 등과 함께 대구경찰서에 다시 붙잡혔다가, 5월 20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장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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