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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억

白正億

1896. 8. 8 ~ 1942.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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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백정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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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天安)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천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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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7)

관련 사건

  • · 천안군 갈전면(4.1)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7) 1896년 8월 8일 충청남도 천안군(天安郡) 수신면(修身面) 복다회리(卜多會里)에서 태어났다. 백정운(白正云)·백정옥(白正玉)이라는 이명을 사용하였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고, 천안군 갈전면(葛田面) 병천시장(竝川市場, 아우내장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1일 충청남도 천안군 갈전면에 위치한 병천시장에서는 조인원(趙仁元)·김교선(金敎善)·유관순(柳寬順) 등의 주도로 만세운동이 벌어졌다. 먼저 서울에서 시위를 경험한 유관순은 귀향하여 태극기를 제작하는 가운데 독립운동을 계획하였다. 또한 유관순의 부친인 유중권(柳重權)을 비롯해 유중무(柳重武)·조병호(趙炳鎬)·박봉래(朴鳳來) 등과 협의하여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4월 1일 오후 1시 무렵에 조인원을 비롯한 주도 인사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이와 함께 홍일선(洪鎰善)과 김교선 등은 시장에 오가는 주민들에게 만세운동에 가담할 것을 권유하였다. 이에 약 3,000여 명의 군중들이 합세하여 만세를 부르는 가운데 시장 곳곳을 누볐다. 이미 3월 1일 이후 전국적으로 독립 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고 이러한 시위의 취지에 적극적으로 찬동하였기 때문에, 4월 1일의 만세운동에 참여하고자 병천시장으로 나아갔다. 현장에서는 다수의 군중들이 모여서 시위를 벌이고 있었으며, 이때 김상훈(金相訓)으로부터 태극기를 건네받고 시위 행렬에 참가하였다. 단순한 시위 참여뿐만이 아니라 만세운동 준비의 과정에서도 일정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재판에서 당국에 의해 압수당했던 유관순의 태극기가 자신이 제작한 것임을 진술한 것으로 보아 만세운동 계획 단계에도 개입하고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시장에서 50보(步) 정도 떨어진 병천헌병주재소(竝川憲兵駐在所)에서는 만세시위를 전개하던 군중들에게 해산을 명령하고 행렬을 저지하였다. 그러나 시위대가 불응하자, 군중들을 향해 발포하고 검을 휘두르는 등의 폭력적인 방식으로 시위를 진압하였다. 이로 인해 유중권 등 2명이 중상을 입어 빈사 상태에 빠졌으며, 조인원 역시 총검에 의해 상처를 입었다. 강제 진압으로 인해 시위대가 잠시 흩어졌으나, 이내 재집결하여 사상자 발생에 대해 강력히 항의하고 구금자 석방을 요구하였다. 이처럼 시위대의 저항이 격렬해지자 천안에서 헌병 하사 1명과 천안철도엄호대장 갑(甲)대위 등 6명이 자동차로 도착했고, 함께 무력으로 군중을 해산시켰다. 이후 붙잡혀, 1919년 5월 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년을 받았다. 다른 시위 참가자들과 함께 항소하여 같은 해 6월 3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으로 감형되었다. 무죄를 주장하며 다시 상고하였지만, 그해 9월 11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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