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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만수

宋萬洙

1911. 12. 21 ~ 1974.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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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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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담양(潭陽)학생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담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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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광주학생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11년 12월 21일 전라남도 담양군(潭陽郡) 금성면(金城面) 대성리(大成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송돈효(宋燉孝)이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 당시 광주고등보통학교(光州高等普通學校) 5학년이었다.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29년 10월 30일 최초의 충돌 이후, 11월 3일 광주 읍내에서 다시 한국인 학생들과 일본인 학생들 간 충돌이 일어났다. 이날 정오 무렵 한국인 학생들과 함께 대처방안을 논의하여, 각자 대오를 조직해서 눈에 잘 띄는 장소에서 시위운동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오후 1시경 동료 학생들과 함께 광주교보 교문을 출발하여 교가와 운동가를 크게 외치며 행진하였다. 일제 경찰로부터 제지 받았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오후 3시까지 행진하다가 학교로 돌아와 해산하였다. 11월 4일부터 일제 경찰이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을 대대적으로 검거하자, 광주 중등학교의 독서회를 지도하던 장재성(張載性)과 장석천(張錫天) 등은 광주학생운동을 전국적으로 확대시키고자 학생투쟁지도본부를 세우고 2차 시위를 위한 격문을 제작하였다. 11월 12일 오전 8시 김동섭(金東燮)·김삼석(金三錫)·김홍남(金鴻南) 등과 함께 격문 1,000여 장을 받고 2차 시위를 준비하였다. 그 날 1교시 수업 도중 교실을 뛰쳐나와 시위를 일으키자, 같은 학교 학생 1백 수십여 명이 호응하여 함께 교문을 나섰다. 이때 선두에서 서서 전단을 뿌리며 가두시위를 이끌었다. 행진 도중 광주농업학교(光州農業學校) 학생들과 합류하였다. 일제 경찰이 학생들을 해산시키고 주동자를 검거할 때 붙잡혔다. 1930년 2월 26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항소하였으나 그 해 5월 1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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