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성
朴鍾聲1883. 10. 5 ~ 1940. 6. 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3) 1883년 10월 5일 강원도 원주군(原州郡) 건등면(建登面, 현 문막읍) 포진리(浦津里)에서 태어났다. 경성부(京城府) 장사동(長沙洞, 현 종로구 종로1·2·3·4가)에 거주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1915년 12월 감리교 전도사로 원주군 문막(文幕) 구역의 첫 파송 담임자가 되어 1916년부터 1918년 5월까지 문막교회 전도사로 근무하였다. 1917년 11월 교회 내에 유치원을 설립하였고, 1918년 3월 사립 문정보통학교(文正普通學校) 건물 10동을 매입하여 교회 예배당을 확장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이 발생하자 교회를 떠나서 서울로 올라왔다. 1921년부터 독립운동에 뜻을 같이하는 이재근(李載根)·전해운(全海雲)·이영휘(李英輝)·이영훈(李英薰)·박창선(朴昌善)·이태훈(李英薰)과 임시정부를 도와 독립운동자금 모집 계획을 세웠다. 1921년 1월 상하이(上海)에 갔던 민정식(閔廷植)이 펑톈(奉天)을 거쳐 서울로 올 때 임시정부의 독립공채증서를 가지고 왔다는 소식을 듣고 전해운이 민정식을 만나 독립공채증서 3장을 전달받아 군자금 모금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3월 안성군(安城郡) 서운면(瑞雲面) 산평리(山坪里) 민만식(閔晩植)의 집에 가서 임시정부를 위해 독립자금 1천 원을 요구했으나 “그렇게 큰돈은 없으며 100원 정도는 낼 수 있다”고 하자, 수 일 뒤에 다시 방문하기로 하였다. (음)3월 14일 전해운은 이영휘를 보내 민만식으로부터 100원을 받고 공채증서 1장을 주었다. 그해 4월 20일 동지들과 더욱 많은 독립자금을 모아 임시정부로 보내기 위해서는 독립공채증서가 필요하다는데 뜻을 모았다. 이재근·이영훈과 서울 삼청동(三淸洞) 산속에서 독립공채증서를 제작하였고, 이 때 그림을 담당하였다. 5월 29일 오후 종로(鐘路)에 있는 요리점 제일루(第一樓)에 모여 음성(陰城)·충주(忠州)·제천(堤川) 등 지방에서 독립자금을 모집할 계획을 논의하고 오후 10시에 식사를 마치고 나오다가 경기도 경찰부 고등과 경찰에 붙잡혔다. 1921년 8월 2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조선 독립의 사상을 품고, ‘정치 변혁을 목적으로 치안을 방해한 자’로 지목되어,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원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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