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섭
朴鍾燮1873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자신회
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관련 사건
- · 을사오적 암살단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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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5) 충청북도 옥천군(沃川郡) 이남면(伊南面, 현 옥군 이원면) 출신이다. 1906년 판결문에 35세로 기록되어 있어 1873년생으로 추정된다. 한자가 다른 박종섭(朴種燮·朴鐘燮)이라는 이명이 있다. 1907년 을사오적 처단 거사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07년 2월 나철(羅喆)·오기호(吳基鎬) 등은 을사늑약(乙巳勒約)에 협조한 이근택(李根澤)·이지용(李址鎔)·박제순(朴齊純)·권중현(權重顯)·이완용(李完用) 등, 이른바 ‘을사오적(乙巳五賊)’을 처단하고, 친일 정부를 전복할 목적으로 비밀결사 자신회(自新會)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박대하(朴大夏)·이홍래(李鴻來) 등을 전라도와 대전 등지에 보내 거사에 동참할 결사대원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2월 초순경 대전에서 김주사(金主事)의 권유를 받고, 동향 출신인 지팔문(池八文)과 함께 결사대에 합류해 서울로 올라왔다. 1907년 3월 25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을사오적과 법무대신 이재극(李載克)까지 총 6명을 각각 나누어 처단하기로 하였다. 당일 10시 김동필(金東弼)의 지휘를 받아 지팔문 등과 함께 내부대신(內部大臣) 이지용을 처단하기 위해 남대문 밖 정거장 부근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동(寺洞) 노상에서 군부대신(軍部大臣) 권중현 처단을 담당했던 또 다른 결사대의 저격이 실패하고 강상원(康相元)이 붙잡히면서 경계가 삼엄해졌다. 이에 훗날을 기약하고 해산하였으나, 경기도 진위군(振威郡)에서 지팔문과 함께 붙잡혔다. 이 일로 1907년 7월 3일 평리원에서 이른바 내란죄로 유형(流刑) 10년을 받았다. 나철을 비롯한 몇몇 동지들과 함께 전남 지도(智島, 현 신안군 지도읍)로 유배되었다가, 같은 해 12월 18일 사면을 받고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승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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