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렬
徐相烈1856. 2. 10 ~ 1896. 6. 1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호좌의병부대
포상 정보
- · 독립장(196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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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장(1963) 1856년 2월 10일 충청북도 제천(堤川)에서 태어났다. 자는 경은(景殷, 敬殷)이고, 호는 경암(敬菴)과 춘수당(春睡堂)이다. 무반 집안 출신이며, 생부는 서진순(徐進淳)이며, 어려서 서제순(徐濟淳)에게 입양되었다. 입양될 무렵 조부는 일찍 사망하였고, 아버지는 벼슬을 얻지 못한 채 일찍 세상을 떠나 가문이 기우는 상태였으므로 어머니 파평 윤씨의 엄격한 지도 아래 성장하였다. 10대 시절에 서상익(徐相翊)의 집에서 다섯 살 아래의 조카뻘인 서광범(徐光範)·박영효(朴永孝) 등과 함께 공부하였다. 한때 무과에 나아가 급제하고 권력가 민태호(閔台鎬)의 집에 출입하였으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문객 생활을 그만두었다. 독일인 묄렌도르프가 고위 관료에 임용되자 벼슬길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렸다. 28세에 충북 청풍(淸風, 현 제천)의 국사봉(國師峯) 아래에 있는 안간이(현 제천시 금성면 활산리) 마을에 정착하였다. 1884년 같은 집안 출신의 서광범·서재필(徐載弼)이 갑신정변을 일으키자, 집안에서 ‘역적’이 나왔다는 생각에 충격을 받고 화서학파(華西學派)에 출입하였다. 영평(永平, 현 포천 북부 지역)에서 강학하던 김평묵(金平默)을 찾아 배움을 청하였고, 뒷날 유중교(柳重敎)의 문하에 나아갔다. 유중교가 제천(堤川)의 장담(長潭)으로 이주하여 강회를 시작하자 장담 마을로 이주하였다. 그후 유중교의 충실한 문도요, 후원자로서 처신하였다. 심학(心學)·실천윤리·예악에 이르기까지 두루 관심을 보이며 학문에 몰두하였고, 여러 사우(士友)와 어울려 강론하는데 뛰어났으며, 초학자들을 지도하는데도 능력을 발휘하였다. 이 시기에 집안의 주선으로 선전관(宣傳官) 벼슬을 받았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유중교가 사망한 후, 장담에서 스승이 남긴 ‘열흘마다 베푸는 강의와 1년에 두 차례 열리는 춘·추의 강회(講會) 제도’를 이어나가기 위해 노력하였다. 아울러 이근원(李根元)·이소응(李昭應) 등 동문 선배들과 함께 스승의 문집인 『성재집(省齋集)』을 출간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일본군의 경복궁 습격과 갑오개혁 소식을 전해 듣고 의병을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하였으나, 동학농민군이 봉기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895년 여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며칠간 통곡하였다. 그 해 연말에 단발령이 내리자 지평의 선비인 이춘영(李春永), 포수대장인 김백선(金伯先)이 포군(砲軍)을 모아 원주의 안창(安昌,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에서 봉기하고 제천으로 달려왔으며, 장담 선비인 이필희(李弼熙)와 안승우(安承禹) 등이 그들을 맞았다. 이 무렵 의병을 일으킬 것을 포천 선영에 고하고 의병부대에 가담하였다. 장담 선비들이 힘을 보태면서 지평 의병부대는 ‘제천 의병부대’로 개편되었다. 무인 출신의 장담 선비인 이필희가 대장이 되었을 때, 군사(軍師)의 책임을 맡았다. 단양군수 권숙(權潚)을 찾아가 의진에 참여할 것을 강하게 요청하였고, (음)12월 8일 단양의 장회 골짜기에서 벌어졌던 첫 전투를 지휘하여 승리하였다. 이후 의병부대가 내부 분열로 약화되자 유인석(柳麟錫)을 대장으로 맞아들여 재기하고자 하였다. 1895년 (음)12월 24일 영월로 북상한 의병 지도부는 유인석을 대장으로 추대하였다. 의병부대는 ‘호좌 의병부대’로 재출발했고, 곧장 제천으로 내려가서 사군 지역을 다시 장악하였다. 단양군수와 청풍군수를 처단하여 기세를 올렸고, 충주성으로 나아가 관찰사를 처단하였다. 이때 영월에 남아 병력을 모으고 병사들을 훈련시켰다. 이후 일제의 탄압으로 호좌의병부대가 위기에 처하자 ‘소모토적대장(召募討賊大將)’의 직책을 받고 영남 쪽으로 이동하여 활로를 개척하였다. 영월을 출발하여 영천(榮川)·풍기(豐基)를 거치면서 병력을 모으고 영남의 유력 인사를 맞아들였다. 영남지역 의병부대와 연대하여 태봉(台封)을 공격한다는 목표를 설정하였다. 또한 의병에 협조적이지 않은 예천군수 등을 처단하였다. 1896년 (음)2월 16일 태봉을 공략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이후 4월 초 안동·예천에서 잇달아 패전하였다. 이 무렵 왕명을 내세우며 해산을 요구하는 경병(京兵)으로부터 군사적 위협을 받았다. 이런 상황을 수습하고자 영남지역 활동을 마무리하고 북상하였다. (음)4월 13일 유인석 부대 본진과 합류하여 재기를 위해 인근 지역을 전전하면서 고투하였다. 의병부대의 약화를 만회하고자 서북 지역으로 이동할 것을 건의하였다. 얼마 후 이동을 시작하였는데, (음)6월 13일 유인석이 이끄는 대장진에 앞장서서 길을 열다가 낭천(狼川, 현 강원도 화천)에서 전사하였다. 저술로 『경암집(敬庵集)』이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구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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