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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찬복

白贊福

1894. 12. 12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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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백찬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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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창성(昌城)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창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대한통의부
  • · 국민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5) 1894년 12월 12일 평안북도 창성군(昌城郡) 대창면(大倉面) 학성리(鶴城里)에서 태어났다. 성장 과정 및 만주로의 이주 시기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만주로 건너가서는 랴오닝성(遼寧省) 푸쑹현(撫順縣) 동일조통(東一條通)에 거주하였으며,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국민부(國民府) 등 독립운동단체에 소속되어 항일활동을 하였다. 대한통의부는 1920년 만주 일대에서 경신참변(庚申慘變)으로도 알려진 한국인 대학살이 벌어진 이후 혼란스러워진 만주 지역의 독립운동을 재정비할 필요성에 의해 조직되었다. 1922년 2월 한족회(韓族會)·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등의 단체가 주축이 되어 대한통군부(大韓統軍府)를 결성하였다. 이후 다른 독립운동 단체와 교류·교섭하는 과정에서 확대되어 대한통의부로 재편되어 만주지역 한인들의 자치활동 및 무장투쟁 등을 주도하였다. 1921년 6월 대한통의부에 가입하여 1926년까지 약 5년에 걸쳐 만주 일대의 흥화(興化) 지방에서 의무금을 모집하는 활동에 종사하였다. 1929년 2월에는 국민부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국민부는 만주 일대에서 활동하던 참의부(參議府)·정의부(正義府)·신민부(新民府) 등의 세 독립운동 조직이 통합 과정을 거쳐 1929년 결성한 조직으로 만주 지역 한인사회 자치에 주력하는 단체였다. 국민부에서는 만주지역 요동 일대의 무본(撫本) 지방에서 제2구 집행위원장으로 1931년까지 있으면서 의무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2년의 활동기간 동안 2천여 원의 의무금을 모집하였다. 1931년 12월 군자금 모집 과정에서 이경조(李京兆)와 이순범(李順範) 등에게 모금 활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게 붙잡혔다. 1932년 4월 30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았다. 이후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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