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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源淵

源淵

1894. 8. 14 ~ 1949.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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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源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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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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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흠치교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8) 1894년 8월 14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예안면(禮安面) 삼계리(三溪里)에서 태어났다. 1920년 (음)8월부터 흠치교에 입교하고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흠치교는 1894년 동학농민운동 이후 강일순(姜一淳)을 중심으로 시작된 급진적 성격을 지닌 신흥종교운동의 하나였다. 강일순 이후에는 차경석(車京石)이 교주(敎主)가 되어 교단을 이끌었다. 흠치교는 종교를 표방해 치성비라고 하는 군자금을 모집하고 다수의 교인 집단을 만들어 “1924년 갑자년(甲子年)을 기하여 국외에서 이미 독립운동을 하고 있는 다른 독립결사단과 호응하여 조선독립운동을 개시할 것”이라며 선전해 자금모집과 교단 성장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흠치교가 대규모 조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배경에는 독특한 조직 구성이 큰 역할을 하였다. 흠치교는 교주 아래로 60인의 고문을 두고, 각 고문은 6인조를 두고, 6인조는 다시 각 12인조, 12인조는 각 8인조, 8인조는 각 15인조 등 순서를 통해 전국적으로 대규모의 조직을 갖출 수 있었다. 또한 각 조직별로 치성비라는 이름으로 6인조는 30원, 12인조는 15원, 8인조는 10원, 15인조는 5원을 거두어 종교 행사비를 충당하고 나머지는 본부로 보내 독립운동 자금으로 활용하였다. 1920년 (음)8월 흠치교의 8인조가 되어 활동을 시작했으나 곧 일제 경찰에게 발각되어 붙잡혔다. 1921년 4월 22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겪다가 1922년 7월 21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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