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柳重協

重協

1891. 6. 3 ~ 1959. 8. 24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柳重協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충남 천안(天安)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천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광복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1년 6월 3일 충청남도 천안군(天安郡) 업성리(業城里, 현 천안시 서북구 업성동)에서 아버지 유원기(柳源基)와 어머니 밀양손씨(密陽孫氏)의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성화(聖化)이다. 부인 김순진과의 사이에서 1녀를 두었다. 1910년대 후반 국내 최대 항일단체였던 광복회 충청도지부원으로 천안에서 정보 수집과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7년 (음)6월 광복회(光復會) 충청도지부가 조직되고, 김한종(金漢鍾)이 충청도지부장이 되었다. 같은 해 (음)7~8월 김한종의 권유로 광복회에 가입한 장두환(張斗煥)으로부터 광복회의 취지와 목적을 듣고 동조하여 도울 것을 약속하였다. 가입 후에는 천안 지역 내에서 전술 행동을 극비리에 진행하였다. 장두환으로부터 권유받고 추가로 가입한 조종철(趙鍾哲)·강석주(姜奭周)·정우풍(鄭雨豊) 등을 포함해 충청도지부는 홍성(洪城)·예산(禮山)·청양(靑陽)·아산(牙山)의 홍주문화권 인사 47명과 천안 인사 10명으로 결성되었다. 이들과 함께 천안·아산·연기(燕岐) 등지에서 활약하는 장두환을 도와 천안 지역 내에서 정보 수집과 군자금 모집에 일조하였다. 1918년 1월 하순부터 충청도지부 핵심 인물인 김한종과 장두환을 시작으로 일제 경찰의 검거가 시작되어 1월 말 충청도 지부원들과 함께 붙잡혀 이른바 공갈 혐의로 공주감옥에 투옥되었다. 같은 해 7월 11일 최준(崔浚)·권준흥(權準興)·이정희(李庭禧)·김재정(金在貞)·홍현주(洪顯周)·성달영(成達永)·기재련(奇載璉)과 함께 판사의 권고를 받고 7월 18일 보석으로 풀려났다. 그 해 10월 19일 예심을 거쳐 다음 해 1919년 2월 2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검사가 “광복회에 가입하여 치안을 방해했다”는 취지로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9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무죄가 확정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조준희⋮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