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柳在赫

在赫

1911. 2. 9 ~ 미상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柳在赫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충북 옥천(沃川)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옥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애족장(2007)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7) 1911년 2월 9일 충청북도 옥천군(沃川郡) 옥천면(沃川面) 상계리(上桂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유재학(柳在學)이고,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유천재혁(柳川在赫)을 썼다. 1925년 옥천공립보통학교(현 죽향초등학교) 5학년을 중퇴한 후 1939년 4월까지 동교(同校)와 옥천군청에서 소사(小使)로 일하였다. 이후 서울에서 과일행상 등을 하며 지내던 중, 일본 제국주의를 미화하는 옥천군수 최병협(崔秉協)의 행태에 크게 분개하여 이를 질타하는 서한을 보냈다. 1939년 7월 옥천군수 최병협은 7월 11일자 『경성일보(京城日報)』에 일제에게 부화뇌동하는 글을 투고하였다. 이 글은 1939년 중국 화베이(華北) 전선에서 사망한 육군특별지원병(陸軍特別志願兵) 이인석(李仁錫)의 죽음을 현창(顯彰)한 부일적(附日的) 내용이었다. 이인석은 옥천군 서면 출신으로 1938년 육군특별지원병 제1기로 입대해 세간에 널리 알려진 인물로 일제의 중국 침략 와중에 동원되어 중국 북부전선에 배치되었다가 전사하였다. 그러자 일제는 그의 죽음을 ‘영예로운 죽음’으로 미화하며 한국인 군사 동원의 표상(表象)으로 삼으려 하였다. 최병협은 이러한 일제 동화정책과 전쟁 동원에 적극 동조하며 이인석의 죽음과 유족의 태도를 “군인가족의 귀감이 된다”라고 호도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행위에 분개하여 서한을 보내 “늙은 부모와 처를 둔 이인석을 흉계로 전장에 보내 전사시켰음에도 일본의 노예로 아첨하기 위해 더러운 말을 한다”라며 최병협을 크게 꾸짖었다. 군수를 협박했다는 혐의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고 이른바 육군 형법 위반으로 1940년 6월 경성복심법원에서 금고(禁錮) 1년을 받았다. 대전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고, 1941년 2월 말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황선익⋮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