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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선

申鍾善

1876. 5. 24 ~ 1936.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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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신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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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보령(保寧)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보령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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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조선민족대동단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1) 1876년 5월 24일 충청남도 보령군(保寧郡) 청소면(靑所面) 진죽리(眞竹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권창환(權昌煥)을 사용하였다. 1917년 서울로 올라와 거주하던 중 1920년 9월 신덕영(申德永)을 만나 대동단에 가입하였다. 이때의 대동단은 1919년 국내에서 결성되었다가 1920년 해체된 조선민족대동단(朝鮮民族大同團)과는 달리, 1919년 10월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한 대동단 총재 김가진(金嘉鎭)과 단원 나창헌(羅昌憲) 등이 중국 상하이에서 재건한 대동단을 가리킨다. 김가진과 나창헌은 1920년 봄 대동단 재건을 선포하면서 국내에 지단을 설치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평북과 함북 일대에 지단을 세울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신덕영이 조선지부장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북간도 무관학교의 한문교사 출신인 신덕영은 1920년 8월 국내로 들어와 동지 규합과 군자금모집 활동을 펼쳤다. 이때 신덕영을 통해 김병련(金秉璉)·김두백(金斗白) 등 청년들과 함께 대동단에 가입하여 4인 체제로 활동하였다. 이후 대동단 총재 김가진 명의로 발행한 독립운동자금수령서를 갖고 독립운동자금 모집 활동을 벌였다. 이러한 활동을 하던 중, 1921년 2월 일제 경찰에 붙잡혀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다가 1922년 1월 26일 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장석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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