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용
宋龜用1884. 2. 11 ~ 1950. 6. 3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무명
포상 정보
- · 애족장(200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1) 1884년 2월 11일 충청남도 대덕군(大德郡, 현 대전광역시) 외남면(外南面) 연효리(連孝里)에서 태어났다. 비밀결사 ‘무명(無名)’을 조직하여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경술국치 이후 국권회복과 조선독립을 염원하던 중, 『주역(周易)』의 ‘하도낙서(河圖洛書)’에 표현된 ‘상생상극(相生相克)’의 이론을 이용하여 일제의 한국 강제병합은 일시적 현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믿었다. 또 언젠가는 한국이 일제의 통치를 벗어날 시기가 반드시 올 것이라 기대하고 운동을 결의하였다. 이에 1928년 2월부터 임치재(任致宰)와 함께 대전부 내 본정(本町) 1정목(丁目)에 남일무역상회(南一貿易商會)라는 곡물상을 경영하면서, 오석근(吳錫根)·서현근(徐鉉根)·엄영섭(嚴英燮) 등을 동지로 가입시켰다. 1930년 5월경 『예기(禮記)』의 ‘대도무명(大道無名)’을 인용하여 ‘무명’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활동비를 모으는 등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1932년 12월경 경성대성원(京城大聖院) 대전총지부(大田總支部)를 설립하고 비밀리에 활동하였다. 이어 논산(論山)과 대덕을 중심으로 하면서 유성수(柳成洙)와 장한규(張漢奎)를 동지로 규합하였다.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가까운 장래에 상생의 세상이 되고 한국 독립의 행운이 도래할 시기가 가까워질 것이다. 국제관계는 일본에 불리하게 되고 만주사변의 종국을 맞게 되어서는 일본은 소련과 개전하기에 이를 것이며, 병력과 재력 모두 피곤해져 일본은 결국 패전하여 국내에 혁명이 발발하는 것은 필연의 귀결이다. 이때는 우리 동지들이 봉기하여 한국의 독립이란 본뜻을 관철시킬 절호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1938, 39년에 전쟁이 있고, 1940, 41년에는 우리 동지가 궐기하여 한국 독립을 위해 활동하고, 1942, 43년에는 한국의 독립을 실현하여 한국 민중은 행복히 생활을 경영할 수 있다”고 예견하면서 이를 적극 선전하였다. 이어 동지 10여 명을 소집하여 공주군 반포면(反浦面) 김연초(金連草)의 집에서 소원성취 기원제(祈願祭)를 열었고, 1938년 5월 경성대성원 본부를 양도받아 본부를 대전으로 옮기고 부원 37명과 전 국내 7개 처의 총지원(總支院), 7개 소의 지원(支院), 20개 소의 총 회원 7천 명의 회원을 규합하여 활동하였다. 1938년 9월 대전경찰서에 조직이 발각되어 붙잡혔다. 1940년 10월 2일 대전지방법원에서 육해군형법 위반으로 징역 1년(미결구류일수 중 300일 본형 신입)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41년 12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조재곤⋮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