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손진인

孫晋仁

1869. 12. 14 ~ 1935. 12. 28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손진인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북 경주(慶州)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경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5)

관련 사건

  • · 제2차 유림단(儒林團)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1995) 1869년 12월 14일 경상북도 경주군(慶州郡)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손최수(孫最秀)는 구한말 의병운동을 주도했던 유림이다. 본관은 월성(月城)이며, 이명은 손진수(孫晉洙)이다. 이후 경남 울산군(蔚山郡) 범서면(凡西面) 입암리(立岩里)로 이주하였다.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의 사돈이었다. 1919년 만세운동 이후 김창숙은 이른바 파리장서(巴里長書) 사건이 일어나자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였다. 1925년 1월 김창숙은 동지 송영호(宋永祜)·김화식(金華植)·이봉로(李鳳魯) 등과 함께 영남 지방 부호들을 상대로 20만 원의 군자금을 모집할 계획을 세웠다. 이러한 계획 아래 김창숙은 같은 해 (음)7월 7일 서울로 들어왔다. 같은 해 (음)8월 서울 동대문 밖에서 정수기(鄭守基), 아들 손후익(孫厚翼)과 함께 김화식을 만나 이들이 국내에 들어온 목적을 듣고 함께 동지가 되어 활동하기로 하였다. 이 때부터 여러 차례 김화식·김창숙 등을 만나 그 실행 방법을 협의하였다. 이어 경주군 지방 부호들을 대상으로 군자금을 모집하는 책임을 맡아 활동하였다. 1926년 3월 무렵 경상북도 경찰부 고등과에 붙잡혔다. 이때는 이미 김창숙이 국내에서 모집한 군자금을 가지고 김창탁(金昌鐸)과 함께 중국으로 떠한 직후였다. 당시 이 사건을 ‘제2차 유림단 사건’이라 불렀는데, 전국적으로 40~50명이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오랫동안 조사를 받고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기소되었으나, 1926년 12월 1일 구류 취소로 풀려났다. 1927년 1월 21일 예심이 종결되어 대구지방법원에서 면소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