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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상룡

成相龍

1916. 3. 10 ~ 1988.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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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성상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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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산(慶山)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경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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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결심대(決心隊)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결심대의 대왕산죽창의거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16년 3월 10일 경상북도 경산군(慶山郡) 남산면(南山面) 사월리(沙月里)에서 아버지 성호식과 어머니 손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일제에 의해 강제로 성전성수(成田盛穗)라는 창씨명을 사용하였다. 자인공립보통학교(慈仁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하고 농업에 종사하였다. 태평양전쟁 말기 일제의 징용·징병을 거부한 결심대(決心隊)의 대왕산죽창의거(大王山竹槍義擧)에 참여하여 소대장으로 활동하였다. 일제의 식민지 수탈이 극에 달하던 1944년 6월부터 강제적인 징병·징용이 자행되었다. 이에 1944년 7월 26월부터 8월 13일까지 경산군 남산면 청년들은 일제의 강제동원을 거부하고 집단적·조직적으로 징용·징병을 거부하는 투쟁을 벌였다. 이른바 결심대의 대왕산죽창의거였다. 1944년 6월 같은 마을의 박재달(朴在達) 등과 함께 징병·징용을 위해 청년대에서 훈련을 받고 있던 청년들을 규합하여 일제에 항거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박재달 등과 함께 같은 해 7월 5일과 7월 8일, 그리고 7월 15일 등 모두 3차례에 걸친 회합을 통해 거사를 논의하였다. 그리고 7월 15일 사월리 원당보(元塘湺)에서 열린 3차 회합에서는 최종적으로 대원 29명에 선정되었다. 7월 26일 새벽 남산면 사월리·산양리(山陽里)·송내리(松內里)·남곡리(藍谷里)에서 모인 26명의 청년들과 함께 대왕산으로 올라갔다. 박재달(朴在達)·박재천(朴在千)·김인봉(金仁鳳) 등 3인은 마을에 남아 정보연락을 담당하기로 하였다. 대왕산에 오른 26명의 청년들과 논의하여 ‘결심대(決心隊)’를 조직하고 편제를 정하였다. 대장은 안창율(安昌律), 부대장은 김명돌(金明乭)이 맡았으며, 이때 1소대 소대장이 되었다. 7월 27일부터 계속된 남산면 주재소 소속 일제 경찰의 회유를 물리치고, 8월 1일부터 2차례에 걸친 일제 경찰의 공격에 죽창을 들고 투석전으로 대응하였다. 그리고 용산(龍山)으로 이동한 뒤인 8월 5일부터 시작된 일제 경찰의 공격 역시 투석전으로 항거하였다. 모두 3차례에 걸친 충돌 과정에서 결심대는 남산면 주재소 파괴와 주재소 주임 살해, 그리고 식량 공급 및 진지 이동 등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러나 8월 9일 식량 공급을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대원들과 함께 하산하였다. 그리고 모든 대원들이 8월 13일까지 체포되는 과정에서 함께 붙잡혔다. 결심대의 대원들은 남산면사무소에서 이틀 동안 조사를 받고 경산경찰서로 이송되어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송치되었다. 1944년 10월 14일경 대구형무소로 다시 이송되어 심한 고문을 받는 등 옥고를 겪다가 광복과 함께 8월 17일 소송이 취하되어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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