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달영
成達永1873. 6. 15 ~ 1932. 11. 3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민종식 의병부대
- · 대한광복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대한광복회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73년 6월 15일 충청남도 아산군(牙山郡) 도고면(道高面) 석당리(石堂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박상진(朴尙鎭)을 총사령관으로 하는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에 가입하여 충남 아산·천안 등의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대한광복회 사건으로 함께 옥고를 치른 성문영(成文永)이 친동생이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었을 때 민종식(閔宗植)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홍주성 전투에서 활약하였다. 민종식 의병부대가 홍주성 전투에서 패한 후에는 충남 예산에 거주하던 김재정(金在貞)의 집에 은거하며 의병 재기를 도모하였다. 1910년 강제병합 이후에도 독립운동의 방안을 계속해서 모색하던 중, 1917년 대한광복회에 참여하였다. 대한광복회는 한말 의병 계열과 계몽운동 계열이 연합하여 결성한 단체로, 1913년 경북 풍기(豊基)에서 조직된 풍기광복단(豊基光復團)과 1915년 대구(大邱)에서 조직된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回復團)이 중심이 되어 1915년 (음)7월 15일 대구에서 설립되었다. 총사령관은 박상진이고 본부는 박상진의 집이 있던 경주에 두었으며, 대구의 상덕태상회(尙德泰商會)가 본부의 기능을 분담하고 있었다. 행동강령은 ‘비밀·폭력·암살·명령’이었다. 대한광복회 충청도 지부에 소속되어 천안·아산 지역을 중심으로 군자금을 모집하는 데 활약하였다. 당시 대한광복회는 회원들의 자산을 군자금으로 활용하기도 했지만, 세금 탈취·화폐 위조·일본인 운영 금광 습격 등의 방식으로 군자금을 모았다. 부호들을 대상으로 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통고문을 발송하기도 했으나, 호응하지 않아 실효가 없었다. 한편, 친일 인사들의 처단에도 참여하였다. 아산군 도고면 면장 박용하(朴容夏)는 의연금 모집 통고문을 받고 이를 헌병에게 넘겼다. 또 면서기를 가혹하게 대우하여 그 가족들의 생활을 어렵게 만들었으며, 전 면장을 옥사시킨 악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에 의연금 모집을 거부하였을 뿐만 아니라, 광복회에 위협이 되는 박용하를 처단하여 다른 친일 인사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로 하였다. 1917년 (음)12월 초부터 천안면(天安面) 성정리(星井里)의 자택에서 장두환(張斗煥)·김경태(金敬泰)·임봉주(林鳳柱) 등 충남 광복회 소속 회원들과 이와 관련한 논의를 하고 사형선고서를 작성하였다. 사형선고서는 “광복회에 반대하였으니 군율로 사형에 처한다”라는 내용이었으며, 마지막에 광복회의 도장을 찍었다. 1918년 초 대한광복회 조직이 드러나면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8년 2월 21일 예심 이후 약 1년간 옥고를 겪다가, 1919년 2월 2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무죄를 받았다. 그러나 검사 측이 항소하였고, 1919년 9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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