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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철수

薛哲秀

1914. 6. 25 ~ 1981.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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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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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昌原)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창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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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8) 1914년 6월 25일 경상남도 창원군(昌原郡) 창원면(昌原面) 동정리(東井里)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설갑수(薛甲秀)이고, 이명은 설서영(薛曙影)이다. 창원공립보통학교 졸업 후 대구사범학교 심상과에 입학하였다. 대구사범학교에 다닐 때 교사였던 현준혁(玄俊赫)의 영향으로 공산주의와 민족주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34년 3월 제1회로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였다. 같은 달 31일 공립보통학교 교사로 임용되어 4월부터 경상남도 남해군 삼동공립보통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34년 9월부터 1935년 3월까지 삼동보통학교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불어넣었다. 역사 시간에 “한국인으로서 모국의 역사를 아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러일전쟁 이후 한국이 일본의 ‘속령식민지’로 된 이래로 동포는 자유를 억압받고 노예 같은 비참한 민족으로 되었지만 학생들은 한국인임을 잊지 말고 장래의 행복을 획득할 각오를 가져야 한다”라고 가르쳤다. 지리 시간에도 “열강의 식민지로 된 인도의 반영(反英)운동을 예로 들면서 독립과 자유해방을 위해서는 민족적 단결이 필요하며 한국도 일본의 식민지를 벗어나려면 각자 한국 소년임을 자각하여 장래 민족의 자유해방을 위한 활동을 해야 한다”라고 강조하였다. 1935년 5월 어린이날에 학교 숙직실에서 “조선민족무산계급의 비참함을 부르짖는 혁명동지와 뜻을 같이하여 농촌에서 민중계몽을 위해 야학과 강습회 등을 개최하거나 민족적 단체를 조직하여 의식적으로 민족 단결을 도모해야 한다”는 취지의 등사물 30여 장을 인쇄하여 졸업생 정금돌(鄭金乭) 외 30여 명에게 배포하였다. 1936년 7월 하순 학교 숙직실에서 등사판을 이용하여 졸업생에게 인쇄물 30장을 나누어주었다. “지금 우리 동포가 먹지도 입지도 못하는 비참한 운명 아래 멸망의 위기에 처했지만 우리들은 죽림칠현(竹林七賢)처럼 숨지 말고 인도의 간디처럼 동포를 위해 희생적으로 투쟁할 용사를 바라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1937년 10월 27일 학교 숙직실에서 훈민정음 반포기념일을 이용하여 한글의 보존과 발달을 외치면서 이 기념일에는 어떠한 사정이 있더라도 외국어를 사용하지 않도록 호소하는 등사물 40장을 졸업생 40여 명에게 나누어 주었다. 1938년 4월 통영제일공립심상소학교로 옮기는 것을 기회로 민족의식을 높이는 등사물 40여 장을 졸업생들에게 배부하였다. 이 일로 경상남도 경찰부에 붙잡혔으며, 1938년 12월 20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장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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