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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익

徐在益

1905. 9. 7 ~ 1943.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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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서재익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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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광주(光州)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광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적우소년회
  • · 적심단
  • · 광주청년동맹
  • · 조선공산당재건국내공작위원회

포상 정보

  • · 애족장(200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5) 1905년 9월 7일 전라남도 광주군(光州郡) 대촌면(大村面) 칠석리(漆石里, 현 광주광역시 남구 대촌동)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서재옥(徐在玉)이다. 고향에서 성장하여 소년운동과 청년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1923년 4월 적우소년회(赤友少年會) 창립에 참여하여 위원장으로 활동하였고, 1926년 11월 25일 사상단체 적심단(赤心團) 창립총회에 참여하여 총무로 선출되었다. 1927년 11월 5일 신간회 광주지회 회관에서 열린 광주청년연맹(光州靑年聯盟) 회의에서 광주청년동맹 창립을 위한 10인의 창립준비위원회 위원으로 선정되어 활동하였다. 1928년 8월 전남소년연맹(全南少年聯盟) 창립을 위해 전남지역 소년운동자 60여 명이 광주에 모였다. 이때 경찰이 모임을 금지시키고 주요 구성원 17명을 체포할 때 붙잡혀 고초를 겪다가 풀려났다. 같은 해 9월 25일 광주고등보통학교 동맹휴학 당시 광주청년동맹 소속으로 학생들에게 등사판을 빌려주었다는 이유로 다시 붙잡혔다. 1928년 10월 5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출판법과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받고 풀려났다. 1929년 5월 어린이날을 기념하여 광주소년동맹 소속으로 선전물을 배포하고 행진을 시도하였다. 이 일로 다시 일제 경찰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30년 11월 조선청년총동맹에서 광주를 대표하는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31년 2월 전남청년연맹 임원 보궐선거에서 조사연구부를 담당하게 되었다. 그 해 5월 조선공산당 재건국내공작위원회의 전남 지역 책임자로 활동하다 붙잡혔다. 1934년 3월, 징역 5년(미결구류일수 중 720일 본형 산입)을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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