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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초월

白初月

1878. 2. 17 ~ 194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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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백초월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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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고성(固城)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고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전국불교도 독립운동 본부
  • · 민단본부
  • · 일심회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용산역 낙서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78년 2월 17일 경상남도 고성군(固城郡) 영오면(永吾面) 성곡리(谷里省)에서 부친 백하진(白河鎭)과 모친 김해김씨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유년 시절 경남 진주군(晋州市) 정촌면(井村面) 관봉리(官鳳里)로 이주하였으며 고을 향리로부터 한문을 수학하였다. 1890년 지리산의 영원사(靈源寺)로 출가하였다. 해인사(海印寺)에서 불교 기본을 수학하였고, 참선 수행을 하였다. 불교에 대한 실력이 뛰어나서 30대 초반에 영원사 조실(祖室), 해인사·범어사(梵魚寺) 강사(講師)를 역임하였다. 한국불교의 종단인 원종(圓宗)이 일본불교에 매종된 것에 반발한 임제종운동(臨濟宗運動)에 참여하였다. 1917년 청주 용화사(龍華寺)의 포교사(布敎師), 해인사 지방학림의 강사로 활동을 하면서 대중과 학인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용화사에서 『화엄경』을 열람하다가, ‘통만법명일심(統萬法明一心)’이라는 구절에 착안하여 일심(一心), 즉 한마음을 가지고 독립운동을 해야 되겠다는 구상을 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불교 이외의 종교 단체는 적극적으로 참가함에 비하여 불교에서는 무관심한 것을 개탄하였다. 이에 1919년 4월 서울로 올라와서 중앙학림 내에 한국민단본부(韓國民團本部)를 설치하고, 책임자로 있으면서 불교 독립운동을 주도하였다. 민족대표 33인 중 불교계를 대표한 한용운(韓龍雲)과 백용성(白龍城)이 서대문감옥에 수감된 상황에서 불교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군자금을 모집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만주 독립군에 조달하였다. 중앙학림 학인들을 이끌고 지방 사찰 및 승려로부터 모금 활동을 추동하였다. 이에 통도사(通度寺) 주지 김구하(金九河), 천은사(泉隱寺) 주지 하용화(河龍華), 범어사의 오성월(吳惺月), 오리산(吳利山), 김경산(金擎山) 등이 응하였다. 모금된 군자금은 불교 청년과 청년 학승을 통하여 임시정부와 독립군에 전달하였다. 또한 『혁신공보』라는 비밀 소식지를 발간하여 독립운동가 사이에서 독립정신을 고취하고 비밀정보를 공유하였다. 1919년 11월 비밀결사체 대동단(大同團) 소속의 이종욱(李鍾郁)·정남용(鄭南用)과 접촉하여 의친왕(義親王) 이강(李堈)의 국외 망명 계획에 관여하였고, 그 해 11월 25일 만세시위에도 참여하였다. 1919년 12월 2일 군자금 모집의 배후 인물이라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모진 고문으로 고초를 겪고 풀려났다. 1919년 만세운동 1주년을 기념하여 1920년 일본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고자 하였으나, 그 해 3월 1일 일제 경찰에 붙잡혀 같은 해 3월 9일 국내로 압송되었다. 1920년 5월 승려선언서 배포 및 의용승군제(義勇僧軍制) 추진 사건으로 일제 경찰의 추적을 받았다. 1921년 일심교(一心敎)라는 항일 이념을 내세워 일심만능(一心萬能)·군교통일(群敎統一)·세계평화(世界平和)라는 3대주의 강령을 정하였다. 일심만능(一心萬能)은 일심, 한마음이면 민족의 독립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군교 통일주의(群敎 統一主義)는 잡다한 여러 종교를 일심교로 통일하면 세계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했다. 세계 평화주의는 전 인류가 일심이 되면 공산주의와 자유주의를 하나로 만들 수 있어서 세계 평화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일심을 통해 독립을 추진하는 것이었다. 1926년 7월 진관사(津寬寺) 마포 포교당에 일심교의 사무소를 차렸다. 일심교리를 핵심으로 하여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독립운동의 동참을 적극 설득하였다. 이런 활동을 통하여 동지를 포섭하고 군자금을 수집하여 임시정부와 독립군에 송부하였다. 일심회를 전국적인 차원으로 확대하기 위하여 동학사(東鶴寺)·봉원사(奉元寺)·월정사(月精寺) 등에서 강사로 활동하였다. 강사의 역할을 하면서 청년 승려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비밀결사 일심회의 동지를 모집하였다. 1939년 10월 14일 용산역에서 만주로 가는 군용열차에 ‘대한독립만세’라는 격문을 썼다. 이 사건으로 동지 70여 명과 함께 붙잡혔다. 1940년 10월 2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6월을 받고 고초를 겪었다. 1943년 3월 3일 서대문형무소에서 풀려났다. 이후 독립운동 자금 조달 사건으로 다시 붙잡혔다. 1944년 6월 29일 청주형무소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8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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