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준기
白俊基1920. 3. 2 ~ 1950. 7. 2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한국광복군 제2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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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0) 1920년 3월 2일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에서 태어났다. 이후 대전부(大田府) 북정(北町, 현 대전광역시 중구)으로 이주하여 대전공립초등중학교(大田公立初等中學校)를 마쳤다. ‘한국광복군 제2지대 명부’에 따르면, 졸업 후 상업 활동에 종사한 것으로 확인된다. 생계를 위해 중국으로 이주하여 상업에 종사하던 중, 1943년 5월 광복군 대원이 되었다. 산시(山西)·허난(河南) 일대에서 한국광복군 제2지대 소속으로 항일 활동을 수행하며 대원을 모집하던 김천성(金天成) 등의 권유를 받고 입대를 결심한 것이다. 이후 루안(潞安)·윈청(運城)을 거쳐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 소재 광복군 제2지대에 들어갔다. 중국 국민당이 한국인 청년 간부 육성을 위해 편성한 중앙전시간부훈련 제4단 특과총대학원대 한청반(中央戰時幹部訓練 第四團 特科總大學員隊 韓國靑年訓鍊班) 소속으로 간부후보생 교육을 받았다. 한국광복군 제2지대 제1구대 1분대 소속으로 적 후방의 심리전·선전전과 한인 초모(招募) 임무에 종사하였다. 그러던 중 대한민국 임시정부 및 한국광복군과 미 전략첩보기구(Office of Strategic Service, OSS)의 공동첩보작전 계획이 세워졌다. 1945년 4월 3일 , 김구(金九) 주석 등 임시정부와 광복군 측 지도부는 OSS의 클라이드 사전트(Clyde B. Sargent) 대위와의 만남에서 독수리 작전(Project Eagle) 군사합작을 최종 승인하였다. 독수리 작전은 일제로부터 한반도 탈환에 앞서 한국인 요원을 국내에 잠입시켜 적후방공작을 한다는 계획이었다. OSS 측은 각각 광복군 제2지대와 제3지대에서 적합한 대원들을 선발해 국내진공작전 첩보공작을 위한 OSS 훈련을 시키고자 하였다. 이에 1945년 5월부터 다른 광복군 제2지대 대원과 함께 OSS 요원 양성 훈련에 참가하였다. 한반도 잠입 및 사보타주를 위한 유격·폭파훈련과 암호통신 교육을 마치고 독수리 작전 요원에 최종 선발되어 정보·파괴반에 소속되었다. 1945년 8월 이정선(李正善)·장두성(張斗星)과 함께 국내정진군(國內挺進軍) 전라도반 제2조에 배속되어 국내진공작전을 준비하였다.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패망으로 독수리 작전은 무산되었고, 이후 국민혁명군을 도와 중국 내 일본군의 무장해제와 치안 유지 업무를 맡았다. 한국인의 신변 보호 및 귀국 절차를 도왔다. 1946년 6월, 광복군 제2지대장 이범석(李範奭)을 비롯한 제2지대 대원들과 함께 상하이(上海)를 경유하여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 이후 대전으로 돌아와 거주하였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내무부 치안국 경찰로 들어가 대전경찰서에서 복무하였다.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자 북한의 남침에 맞서 항전하던 중 1950년 7월 27일 전라북도 무주군(茂朱郡)에서 전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조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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