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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진기

白鎭起

1896. 6. 17 ~ 1949.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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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백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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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개성(開城)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개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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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개성군 중서면(4.1)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96년 6월 17일 경기도 개성군(開城郡) 중서면(中西面) 곡령리(鵠嶺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4월 1일 개성군 중서면 주민들이 개성 읍내에서 전개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4월 1일 오후 8시경 허내삼(許迺三) 등 곡령리 주민 수십 명은 함께 횃불을 들고 만세를 부르며 개성 읍내로 행진하였다. 시위대가 미륵당(彌勒堂) 마을을 경유할 때 이를 목격하고 행렬에 동참하였다. 이후 시위대는 개성 만월정(滿月町)·만월대(滿月臺) 아래를 경유하여 북본정(北本町) 당교(堂橋)까지 진출하였다. 이곳에는 개성경찰서 경찰 등이 시위대를 막고자 대기하고 있었다. 무장한 시위대를 목격한 경찰부장 야마다(山田增市) 등 경찰 5명, 한국인 경찰보 5명 등이 시위대의 해산을 명령하였다. 하지만 시위대는 경찰의 명령에 불응하고 돌을 던지면서 이들을 포위하고자 하였다. 이에 위협을 느낀 일제 경찰은 칼을 빼 들고 다시 해산을 명령하였다. 그러나 시위 주도자인 허내삼 등이 일제 경찰에 대적할 것을 외치자, 시위대는 독립만세를 부르며 경찰들과 정면으로 충돌하였다. 시위대는 기왓장을 던지고 곤봉 등으로 경찰들과 격투를 벌였다. 결국 시위대 17명이 체포되면서 해산하였다. 이때 일제 경찰에 붙잡혔고, 모진 신문을 거친 후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5월 1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여 같은 해 10월 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징역 6월(미결구류일수 65일은 본형에 산입)로 감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전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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