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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환

白日煥

1884. 9. 6 ~ 1969.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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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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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김포(金浦)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김포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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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월곶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4년 9월 6일 경기도 김포군(金浦郡) 월곶면(月串面) 군하리(群下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김포군 월곶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22일 같은 면 고양리(高陽里)의 성태영(成泰永)과 같은 마을에 살던 부인 이씨(李氏) 등과 함께 “조선 독립을 원하는 자는 공자묘(향교)로 모이라”고 권유하였다. 당일은 군하리 장날로 박용희(朴容羲)·이병철(李柄喆) 등의 협조를 얻어 태극기를 휘날리며 수백 명의 군중 속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군중이 호응하여 만세시위 행진을 벌였고, 월곶면사무소로 이동하면서 만세를 불렀다. 당시 성태영이 면사무소 위로 올라가서 “우리는 독립을 취해야 한다”는 연설을 하였고, 경찰이 연설하는 성태영을 끌어내리면서 육탄전이 벌어졌다. 군하경찰관주재소 순사가 성태영을 제지하려고 할 때 뛰어나와 순사를 구타하였다. 그리고 순사가 가지고 있던 무기를 빼앗은 이후 땅에 넘어뜨리고 다른 여러 명과 함께 난타해 순사의 칼과 모자 등을 파손하였다. 이후 군중과 함께 주재소를 포위한 후 안으로 들어가 마루 밑에 숨어 있던 순사보(巡査補) 이성창(李聖昌)을 끌어내, 한국인이니 독립만세를 부르라고 하였다. 이때 안에 있던 일제 경찰이 막자, 순사보를 끌고 밖으로 나가서 군중과 함께 구타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7월 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직무집행 방해 등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8월 1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불복하고 상고하였으나, 그해 10월 9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다가, 1920년 4월 은사령으로 형량이 줄어 그해 10월 8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주동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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