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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선희

裵善禧

미상 ~ 1919.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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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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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3.1운동

포상 정보

  • · 애국장(2002)

관련 사건

  • · 평안남도 강서군 함종면(3.6)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2)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와 출생일자는 확인할 수 없다. 평안남도 강서군(江西郡) 함종면(咸從面) 일대에서 1919년 3월 6일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일제 헌병의 발포로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강서군 함종면의 만세시위는 함종공립보통학교(咸從公立普通學校)에서 시작되었다. 경성의학전문학교(京城醫學專門學校) 출신으로 개업의(開業醫)였던 강기팔(姜基汃), 범오리(範五里) 주민 이능훈(李能勳)과 오영선(吳永善), 인근의 잡화상이었던 김용수(金龍洙)에 의해 주도되었다. 주도자들은 함종공립보통학교에 군중을 모은 후, 단상에 있는 게양대에 일장기 대신 대형 태극기를 걸고 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계획하였다. 3월 6일 강기팔이 정오 정각에 개회를 선언하였다. 강기팔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학교에 모인 군중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이미 함종면 시내뿐만 아니라 인근의 발산리(鉢山里)·승영리(升盈里)·광덕리(廣德里)·계명리(桂明里) 등의 동리에서도 참가하여 시위 군중은 약 2,000명에 이르렀다. 이때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강기팔 등 주도자들이 비폭력 행동으로 일관할 것을 시위대에게 부탁하였다. 또한 일본 헌병출장소 후쿠나가(福永) 소장에게도 비폭력 행동으로 시위가 이어질 것임을 통보하여 일본군과의 충돌을 예방하고자 하였다. 시위 군중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쳤고, 시위대가 행진하기 시작하자 태극기를 들고 선두에서 이들을 이끌었다. 그런데 만세시위가 마무리될 무렵, 일본군 헌병대가 총칼을 휘두르며 폭력적 진압을 시작했고, 시위대가 저항하자 발포를 감행하였다. 시위대의 선두에서 태극기를 들고 적극적으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으므로 일제 헌병의 총탄을 피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발간한 『한일관계사료집』과 김병조 저술 『한국독립운동사략 상편』에는 3월 4일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사망한 것으로 전하고 있으나, 일제측 기록에서 대대적인 만세시위와 충돌, 사망자 발생은 3월 6일 만세시위로 확인된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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