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목
朴喜穆1896. 8. 2 ~ 1946. 9. 1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9)
관련 사건
- · 선산군 선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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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1999) 경상북도 선산군(善山郡) 무을면(舞乙面) 무이동(舞夷洞, 현 구미시 무을면 무이리)에서 출신이다. 1896년 8월 2일생으로 알려져 있으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에 따르면, 조선 개국 503년(1894년)에 태어났다고 한다. 1919년 당시 판결문에는 26세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1894년생으로 추정된다. 1919년 4월 12일 같은 마을에 사는 전용신(田容信), 도개면(挑開面) 도개동(道開洞)에 사는 권오환(權五煥)·이원길(李元吉)·김의경(金義景) 등과 함께 선산면 읍내 장날에 거행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4월 12일 선산면 만세운동은 권오환의 제의로 시작되었다. 권오환은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번지고 있었지만 자신의 마을에서 일어나지 않은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에 뜻을 같이할 동지를 모으자, 전용신·이원길·김의경과 함께 적극 동참하였다. 권오환은 선산면 읍내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할 것을 제의하였고 다른 동지들과 함께 찬성하였다. 오후 5시경 권오환은 시장 중앙에서 군중들을 향하여 ‘우리들 대한인은 만세를 부르자’고 크게 외쳤다. 이어서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였고, 이원길·김의경·전용신과 함께 ‘독립만세’를 불렀다. 시장에 모여 있던 군중 50여 명도 이들의 외침에 답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시위가 전개되면서 만세운동을 주도한 5명은 시장을 빠져나왔다. 이런 소식을 접한 일제 경찰은 주도 인물 5명을 지목하고 밤에 이들의 집을 수색하였다. 결국 체포망을 벗어나지 못하고 붙잡혀 1919년 5월 2일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경성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1920년 1월 26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9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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