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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안

朴泰安

1898. 6. 14 ~ 1972.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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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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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김천(金泉)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김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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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6) 1898년 6월 14일 경상북도 김천군 김천면(金泉面) 황금정(黃金町, 현 김천시 황금동)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박태언(朴泰彦)을 사용하였다. 1919년 당시 직업은 곡물상으로, 김천의 만세시위 계획에 참여하였다. 김천의 만세시위는 1919년 3월 8일 밤 대구의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한 학생 김수길(金秀吉)과 교회 장로 최용수(崔龍洙)가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는 시위에 영향을 받아 계획하며 비롯되었다. 이 계획에 찬동하여 거사에 합류하였다. 3월 9일 밤 황금정교회의 회합에서 김천 장날인 3월 11일 오후 3시 김천면 욱정(旭町) 감천교(甘川橋) 부근에서 독립의 당위성을 연설하고 군중을 모아 만세시위를 하기로 결정하였다. 3월 10일 김천면 남산정(南山町)에 있는 최용수의 집에서 최용수·김수길과 김천 저축계에서 빌린 등사기를 이용해 시위 당일 배포할 격문 300장을 인쇄하였다. 격문의 제목은 「경문(警文)」으로,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독립 만세 운동에 호응하여 일본의 굴레를 벗어나고 자유로운 국가를 건설하자”는 취지를 담았다. 그러나 1919년 3월 11일 오전 11시경 등사기를 저축계 사무실로 반납하는 과정에서 일제 경찰의 미행을 받아 등사 원고지가 발각되었다. 이로 인해 붙잡혔고 시위 추진은 중단되었다. 1919년 10월 16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출옥 후에는 김천군 금릉(金陵)청년회에서 활동하며 김천유치원 운영을 후원하고 문예부 주최 토론회에 참여하였다. 1923년 3월 11일에는 금릉청년회 정기총회에서 임원으로 선출되었고 1924년 7월 12일에는 김천노우회(金泉勞友會) 창립총회에서 임원으로 선출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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