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채
宋炳寀1909. 8. 27 ~ 1968. 8. 1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전주고등보통학교
- · ㄱ당
- · 사회대중당
포상 정보
- · 애국장(2005)
관련 사건
- · 6
- · 10만세운동
- · 사회대중당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5) 1909년 8월 27일 전라북도 전주군(全州郡) 전주면(全州面) 청수정(淸水町)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송병채(宋炳采)를 사용하였다. 전주고등보통학교(全州高等普通學校)에 재학 중이던 1926년 6월 서울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6월 2~5일 학생 50명과 함께 교사 배척과 기숙사 설치 등을 요구하며 동맹휴학을 전개하였다. 6월 30일 일본인 교장이 수업 중 학생 5명에게 퇴학을 명령하자 교장실로 찾아가서 격렬하게 항의하다 붙잡혀 같은 해 7월 11일 풀려났다. 그 해 12월 다시 동맹휴학을 주도하여 이른바 상해와 협박 등으로 1927년 2월 전주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서울로 올라와 경성노어학교(京城露語學校)에 재학 중 1928년 2월 경신학교(儆信學校)·보성고보(普成高普)·중앙고보(中央高普)·배재고보(培材高普)·양정고보(養正高普)·종로청년학관(鍾路靑年學館)·중동학교(中東學校) 재학생들과 함께 사회주의 연구와 학생운동의 통일, 학생의 현실이익 옹호 등을 목적으로 비밀결사 ‘ㄱ당’을 조직하고 책임비서에 선임되었다. 이들은 각 학교의 동맹휴학을 지도하는 한편 1929년 3·1운동 10주년을 기념하는 전단을 살포하고 시위를 전개하기로 계획하였다. 그러나 이무렵 조선공산당 조직이 일제 경찰에 탐지되자 이에 연루되어 전주에 은신하였으나, 1928년 12월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30년 4월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4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광복 후 1960년 결정된 사회대중당에 참여하여 전라북도당 조직위원장을 맡았다. 1961년 5·16군사정변 이후 남북협상, 남북체육인 교환, 한미경제협정 반대 등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구속되어 1962년 혁명재판부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한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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