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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각

孫永珏

1855. 4. 9 ~ 1907.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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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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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의병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경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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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산남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독립장(198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립장(1980) 1855년 4월 9일 경상북도 경주군(慶州郡) 강동면(江東面) 양동리(良洞里)에서 아버지 손종건(孫鍾健)과 어머니 여주 이씨(麗州 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자는 내숙(迺叔), 호는 낙산(樂山), 본관은 월성(月城)이다. 집안은 대대로 문장과 덕망이 높은 인물을 배출하여 영남 양반으로써 명문이다. 성품이 강직하면서도 믿음직스러웠고 기운이 세었으며 용모가 비범하였다. 부모에 효성 또한 지극하고 형제간에 우애 역시 깊어 주변 사람들의 칭찬이 컸다.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못하여 독학으로 공부하면서 충신열사 및 병법 관련 서적들을 많이 보았다.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되자 결사 항쟁하기로 결심하였는데, 정용기(鄭鏞基)의병장이 산남(山南) 의병부대를 일으키자 참가하여 참모장이 되었다. 1906년 경북 일대에서 활동하다가 일시적으로 부대를 해산하였으나, 1907년 4월 정용기 의병장이 다시 의병을 일으킬 때 함께 하였다. 그 해 7월부터 경북 일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1907년 강릉으로 북상하기로 결정하고 경북 영일군 죽장면 매현(梅峴)에서 진을 쳤다. 그 해 (음)9월 1일 일본군의 공격에 맞서 2시간 동안 격전을 치렀다. 이 전투에서 정용기 의병장 등과 함께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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