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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우

孫聖于

1899 ~ 1933.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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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손성우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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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장연(長淵)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장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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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고려혁명군 결사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1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0) 황해도 장연군(長淵郡) 장연면(長淵面) 칠남리(漆南里) 출신이다. 1930년 당시 32세였던 것으로 보아 1899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으로 최경순(崔景淳)을 사용하였다. 자료의 한계로 만주로 이주한 시기는 확인할 수 없다. 하얼빈(哈爾賓) 일대에서 고려혁명군 결사대원으로 활동하였다. 당시 하얼빈 일대에서는 고려혁명당 당원들의 활동이 활발하였다. 고려혁명군 결사대원으로 함께 활동하던 김보형(金寶炯)·김만와(金晩窩) 등은 모두 고려혁명당의 일원이었다. 1926년 4월경 지린성(吉林省)에서 조직된 고려혁명당은 하얼빈과 국내를 오가며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1929년 9월경 김보형을 결사대 대장으로 임명하고 고려혁명군 결사대를 조직하였는데, 김헌(金軒) 등과 같이 가입하였다. 고려혁명군 결사대는 중동철도 동부연선 오길밀역(烏吉密驛)에서 이범석(李範錫)이 결성한 단체로, 친일파를 처단하는 활동을 펼쳤다. 1929년 10월 25일 밤, 대원 최기호(崔基浩)·김해룡(金海龍) 등과 함께 하얼빈 사도가(四道街)에 살고 있는 이규은(李奎殷)으로부터 군자금을 모집 하던 중, 밀정의 밀고로 일본영사관 경찰 7명이 출동하였다. 교전 중 일제 경찰 1명에게 총상을 입하고, 결사대는 대원 3명이 총상을 입으면서 붙잡혔다. 당시 왼쪽다리와 턱과 기타 여러 곳에 상처를 입었다. 이듬해인 1930년 3월 4명의 대원들과 함께 신의주지방법원 검사국에 송치되었다. 1932년 4월 25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최기호와 함께 징역 10년을 받았다.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던 중, 고문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1933년 4월 6일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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