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윤제
徐允濟1908. 2. 7 ~ 1969. 3. 3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종교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3)
관련 사건
- · 임오교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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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1993) 1908년 2월 7일 함경북도 경원군(慶源郡) 안농면(安農面) 금희동(金熙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이천(利川)이다. 중국 만주 왕칭현(汪淸縣)에서 청일학교, 명동중학교를 설립하여 대종교 사상을 전파하였고, 북로군정서 총재로서 사령관 김좌진과 함께 청산리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서일(徐一)의 아들이다. 아버지인 서일이 1911년에 중국으로 이주한 것을 미루어 보아 그 즈음에 중국에 정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에서는 헤이룽장성(黑龍江省) 영안현(寧安縣)에서 거주하였다. 1925년 중국 동삼성(東三省) 동녕현(東寧縣) 동경성(東京城)에서 대종교에 입교하였다. 이후 대종교의 교세 확장에 앞장섰으며, 항일 활동을 전개하였다. 1932년 안희제(安熙濟)의 주도로 발해의 수도였던 동경성 일대 토지를 매입하고, 개간하여 발해농장이 만들어졌다. 이에 이곳에 대종교 총본사를 설치하는데 앞장섰으며, 발해의 옛 터에 단군의 초상을 봉인하는 천진전(天眞殿)을 건립하였다. 또한 교육기관으로 대종학원(大倧學園)이 설립되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청소년 교육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데 기여하였다. 대종교를 민족주의 조직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던 일제는 대종교인들의 활동에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다. 1942년 겨울, 일제는 경성에 거주하던 한글학자 이극로(李克魯)가 대종교 교주 윤세복(尹世復)에게 보낸 「널리 펴는 말」이라는 후원문을 빌미로 삼아 대대적인 탄압에 들어갔다. 이것을 대종교에서는 ‘임오교변(壬午敎變)’이라고 부른다. 「널리 펴는 말」은 천진전을 짓는 데 협력할 것을 권고하는 글로, 동포들이 모두 일어나서야 할 때가 왔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널리 펴는 말」을 일제는 하나의 ‘조선독립선언서’라고 강조하고 대종교 간부진을 검거하기 시작하였다. 1942년 11월 19일 윤세복·김영숙(金永肅)·윤정현(尹珽鉉)·최관(崔冠)·이재유(李在囿)·권상익(權相益) 등 20명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붙잡힌 이후 목단강(牧丹江) 경무청 액하(掖河) 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다 1944년 1월 2일 풀려났다. 이후에도 항일운동과 대종교 활동은 지속적으로 전개하였다. 1969년 3월 30일에 사망하였으며, 사후 중국 헤이룽장성 해림시(海林市)에 안장되었다가 2007년 국내로 봉환되어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남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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