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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답

宋水畓

1919. 12. 6 ~ 1994.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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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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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산(慶山)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경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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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결심대(決心隊)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결심대의 대왕산죽창의거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19년 12월 6일 경상북도 경산군(慶山郡) 남산면(南山面) 사월리(沙月里)에서 아버지 송태수(宋台壽)와 어머니 윤기연(尹其連)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여산(礪山)이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전시동원체제 하에서 일제의 강제동원 거부 활동을 하였다. 1937년 중일전쟁과 1941년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진 전시동원체제하에서 일제는 한국인에 대한 징병(徵兵)과 징용(徵用)을 강요하였다. 이에 경산군 남산면 청년들은 일제의 강제동원을 거부하고 집단적·조직적으로 항거하였다. 이른바 결심대(決心隊)의 대왕산죽창의거(大王山竹槍義擧)였다. 1944년 6월 같은 마을의 박재달(朴在達) 등과 함께 남산국민학교에서 징용 대상자로 훈련을 받고 있던 청년들을 규합하여 일제에 항거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박재달 등과 함께 7월 5일과 7월 8일, 그리고 7월 15일 등 모두 3차례에 걸친 회합을 통해 거사를 논의하였다. 그리고 7월 15일 사월리 원당보(元塘洑)에서 열린 3차 회합에서는 최종적으로 대원 29명 중 한사람으로 선정되었다. 7월 26일 새벽 남산면 사월·산양·송내·남곡리에서 모인 26명의 청년들과 함께 대왕산으로 올라갔다. 박재달·박재천·김인봉 등 3인은 마을에 남아 정보연락을 담당하기로 하였다. 대왕산에 오른 26명의 청년들과 논의하여 ‘결심대’를 조직하고 편제를 정하였다. 대장은 안창율(安昌律), 부대장은 김명돌(金明乭)이 맡았고, 이때 1소대 대원에 편제되었다. 7월 27일부터 계속된 남산면주재소 소속 일본 경찰들의 회유를 물리치고, 8월 1일부터 2차례에 걸친 일제 경찰의 공격을 죽창을 들고 투석전으로 대응하였다. 그리고 용산(龍山)으로 이동한 뒤 8월 5일부터 시작된 일제 경찰의 공격 역시 투석전으로 맞섰다. 결심대는 남산면주재소 공격과 주재소 주임 살해, 식량 공급 및 진지 이동 등에 대해 새로운 계획을 세우며 항쟁의 의지를 다져 나갔으나 8월 9일 식량 공급을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한 대원들과 함께 하산할 수밖에 없었다. 8월 13일까지 대원 전원이 붙잡혔다. 남산면사무소에서 이틀 동안 조사를 받고 경산경찰서로 이송되어 이른바 보안법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송치되었다. 1944년 10월 14일경 대구형무소로 다시 이송되어 심한 고문을 받는 등 옥고를 겪다가 1945년 광복과 함께 8월 17일 소송이 취하되어 풀려났다. 1995년 5월 31일 남산면 사월리에 「대왕산죽창의거공적비(大王山竹槍義擧功績碑)」가 건립되었고, 2015년 5월 29일부터 추모제가 열리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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