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鳴鍾
鳴鍾1893. 7. 1 ~ 1954. 3. 2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홍성군 광천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3년 7월 1일 서울 안국동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조부 기영(起榮)과 인천 감리주사(監理主事)인 부친 규재(圭宰)의 슬하에서 한학과 신학문을 배우면서 자랐다. 일본으로 유학 갔다가 1917년에 귀국하여 조선총독부 토지관리국에 근무하면서 지하 활동을 하다가 발각되어 파면당하였다. 당시 홍성군수인 둘째 매부의 권유로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가족을 데리고 내려와 충청남도 보령군(保寧郡) 고소면(古所面) 죽림리(竹林里)에 정착하였다. 서울에서 정리한 가산(家産)으로 생활하면서 가학(家學)과 일본 유학으로 익힌 학문을 바탕으로 광천의 명망가인 서승태(徐承台)와 그의 제자인 박원식(朴源植) 등과 교류하는 한편, 옹암리 포구를 출입하는 인사들과도 교제하면서 활동 영역을 넓혀 나갔다. 1919년 3월 6일 광천면 광천리에 있는 박원식의 집에서 조선총독부 근무 때 안면이 있었던 박세화(朴世和)로부터 서울의 만세운동 상황을 전해 듣고 독립선언서를 받아 보았다. 그 자리에서 박원식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기로 상의하였다. 이들은 3월 8일 박세화가 가져 온 독립선언서를 양지 2장에 크게 써서 광천시장과 옹암리의 2개소 벽에 부착하였다. 그러나 순찰하던 일제 순사가 유인물을 떼어 버린 것을 알고 다시 협의하였다. 독립선언서를 인쇄하여 각 가정에 배부하고 광천시장 장날에 군중들에게 ‘독립만세’를 부르도록 독려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또한 성배호(成培鎬)와 상인인 최응모(崔應模)·오인섭(吳仁燮) 등에게도 만세운동 계획을 알리어 함께 하기로 승낙을 받았다. 3월 16일 서승태에게 독립선언서를 보여 주고 만세운동의 실행 계획을 상세히 알리면서, 독립선언서의 내용을 쉬운 문장으로 간략하게 작성하여 줄 것을 요청하여 승낙을 받았다. 이틀 후인 3월 18일 서승태는 광천리 자택에서 박원식과 오인섭에게 선언서의 문구를 가제(加除)하여 불러 주며 필기를 하도록 하였다. 이어 옹암리 오인섭 집에서 박원식·최응모·성배호 등과 함께 만나 협의하여 유인물을 제작·배포하기로 하였다. 서승태가 불러 주어 박원식이 필기한 원고를 바탕으로, 복사지를 이용하여 유인물 약 50매를 등사하였다. 이 유인물을 그날 밤 성배호와 함께 광천리·옹암리 일대의 각 가정에 배포하였다. 이어 3월 21일 광천시장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는 독립운동이 전개되었다. 이후 일제 경찰에 붙잡혀 홍성경찰서에서 갖은 심문과 고문을 당한 후에 공주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어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출판법 위반으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을 받고 항고하였으나, 6월 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이후 다시 일본으로 유학하여 1924년 동경홍료원(東京紅療院)에서 홍료학을 수련하여 학설과 실기시험에 합격하고, 1926년 홍료대학 강습소에서 기초 의학과 홍료법 강습을 마치고 졸업하였다. 귀국 후에는 의료 활동을 하지 않고, 1930년 청소면에 죽림학교를 건립하여 후진 양성에 매진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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