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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吉性

吉性

1874. 10. 30 ~ 1935.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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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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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주(洪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홍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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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파리장서운동
  • · 홍주군 구항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74년 10월 30일 충청남도 홍주군(洪州郡, 현 홍성군) 구항면(龜項面) 황곡리(篁谷里)에서 태어났다. 이설(李偰)의 문인으로 스승이 을사오적(乙巳五賊)을 토벌하는 상소로 옥고를 치른 후 순절함에 따라 그에 대한 원한을 품고 생활하였다. 홍성 지역의 대표적 유림으로 1919년 파리장서운동의 호서지역 대표자로 서명하였고, 4월 7일 횃불독립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이후 전국적으로 만세시위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을 때, 호서(湖西)의 대유(大儒) 김복한(金福漢)은 3월에 장서(長書)를 작성한 후 임한주(林翰周) 등 의병 동지를 찾아가서 서명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어 청양의 안병찬(安炳瓚)·김덕진(金德鎭), 서산의 김상무(金商武)·김봉제(金鳳濟), 보령의 유호근(柳浩根)·신직선(申稷善), 홍성의 최중식(崔仲軾)·전양진(田穰鎭) 등과 함께 10명이 서명하였다. 그밖에 홍성의 전석윤(前錫允), 보령의 백관형(白觀亨)·김병식(金炳軾)·김지정(金智貞), 논산의 이내수(李來修), 부여의 김학진(金鶴鎭) 등이 포함되었다. 또한 홍성 지역의 활발한 만세운동이 전개될 때, ‘독립만세’를 부르기로 결심하고 자택에서 ‘대한독립만세’라고 크게 쓴 종이 깃발을 만들었다. 같은 마을 하대에 서당을 개설하고 후학을 양성하던 황문수(黃文秀)와 협의하여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기로 동의를 얻었다. 이어 이유홍(李有弘)·이백영(李伯榮)·황도명(黃道明)·하유숙(河有淑)·최순보(崔順甫)·전남규(田南珪)·이희보(李熙輔) 등에게 알려 동참하게 하였다. 4월 7일 이들은 마을 주민들을 이끌고 마을 뒷산인 월산(月山)·(日月山)·(白月山) 남쪽 기슭에 올라 ‘대한독립만세’ 깃발을 세우고 횃불을 올리면서 ‘독립만세’를 외치는 횃불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일제 경찰이 출동하여 총을 난사하였으나, 주민들은 피해 없이 하산하였다. 그러나 황문수·이유홍·이희창(李熙昌)·이동규(李東圭)과 함께 인접한 다른 산봉우리인 백월산(白月山) 정상으로 이동하여 홍성 읍내 시가지를 바라보면서 다시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일로 다음날인 4월 8일 황문수·이동규·이유홍 등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혀 홍성경찰서에 구금되었다. 이후 공주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어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재판에 회부되었고, 1919년 4월 2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0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지만, 5월 3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7월 3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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