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基明
基明1898. 2. 27 ~ 1945. 5. 1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혜성단
포상 정보
- · 애족장(2005)
관련 사건
- · 대구부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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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5) 1898년 2월 27일 경상북도 의성군(義城郡) 북부면(北部面) 상리동[(上里洞), 현 의성군 의성읍(義城邑) 상리리(上里里)]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이규하(李圭夏)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성장해서 결혼도 하였으나 고향을 떠나 대구 사립계성학교(私立啓聖學校)에 입학하여 기숙사 생활을 하였다. 1919년 대구부 서문시장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대구지역 만세운동은 크게 세 차례 일어났는데, 가장 먼저 일어난 것이 1919년 3월 8일 서문(밖)시장 만세시위였다. 대구 서문(밖)시장 장날인 3월 8일 개신교 교회 지도자들, 개신교 계열 학교 교사와 학생, 대구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군중과 함께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사립계성학교 교사들은 학생 동원을 지도하였고, 학생들은 태극기와 독립선언서 등을 준비하여 대구지역 만세운동의 본부 역할을 하였다. 이때 계성학교 6학년생으로서 3월 8일 토요일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에 들러 복장을 바꾸어 입고, 동산(東山)을 지나 시장 안으로 숨어 들어갔다. 오후 1시에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약속하였으나 대구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의 도착이 늦어지면서 오후 2시경부터 시작되었다. 남성정교회(南城町敎會, 현 제일교회) 목사 이만집(李萬集)이 임시 단상에 올라서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려 하였으나, 일제 경찰의 제지로 ‘공약 3장’만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모여든 학생과 군중도 힘차게 따라 외쳤다. 만세시위 행렬이 이루어지자 선두에 서서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시가행진에 나섰다. 서문교(西門橋)에서 종로를 거쳐 동성로(東城路)로 나아가 달성군청(達成郡廳) 앞에 이르자 일본군 보병 제80연대 병력이 길을 가로막았다. 시위행렬이 물러서지 않고 저항하자 일제 군경은 무자비하게 탄압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피신하였으나 4월 1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궐석재판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시위에서 몸을 피한 계성학교 학생들은 3월 중순 4학년 김수길(金壽吉)의 하숙방에서 여러 차례 동지들과 협의하여 민중과 관리들의 독립운동 협조와 각성을 촉구하는 「경고문」을 작성하여 배포하기로 결의하였다. 먼저 4월 2일경 시장 상인들에게 일본인과의 상행위를 일체 중지할 것을 경고하는 「동정표시경고(同情表示警告)」 제1호 300매를 작성하여 부내(府內)에 배포하였다. 이에 상가 80여 호가 폐점 또는 철시로 호응하였다. 4월 3일 경에는 상가 폐점을 촉구하는 문서 2통을 작성하여, 포목상 김응수(金應壽)와 김경부(金敬夫)의 집으로 발송하였다. 4월 6일에도 비슷한 내용의 경고문 제2호 400매를 작성하여 주민들에게 배포하여 독립운동 참여를 촉구하였고, 대구경찰서장에게 “너는 왜 3월 8일 한국독립만세를 부르는 무고한 애국 동포를 검거하였느냐? 너희들과 같은 자는 암살할 시기가 있을 것이니 각오하라!”라는 내용의 경고장을 보냈다. 4월 7일에는 “내일 아침부터 철시 폐점하라! 일본 상인과는 거래를 하지 말라! 폐점하지 않는 자에게는 강제 수단을 쓸 것이다!”라는 내용의 「동정표시경고」 제3호 300매를 작성하여 여러 상가에 배포하였다. 이러한 투쟁을 보다 조직화하기 위해 4월 17일 봉산정(鳳山町) 한세동(韓世東)의 집에서 비밀결사 혜성단(惠星團)을 조직하였다. 본부는 대구에 두고 지부는 서울과 만주 등지에 설치해 출판물을 간행 배포하여 민중을 각성시키고자 하였다. 이때 인쇄물 출판과 배포 업무를 담당하였다. 그리고 4월 18일 국민의 궐기를 촉구하는 「근고동포(謹告同胞)」 격문 약 300매, 4월 27일 「경아동포(警我同胞)」 경고문 300매 등을 작성·배포하였다. 5월 7일에는 “너희 조선 관공리는 호구(糊口)를 위해 동족의 원수가 되고 있으니 속히 각성하여 사직하고 조국을 위해 독립운동을 하라!”라는 내용의 「경고관공리동포(警告官公吏同胞)」 200매를 작성하여 도내(道內) 군수와 면장 등에게 발송하였다. 이러한 활동이 일제 경찰에 탐지되면서 김수길을 비롯하여 5월 중순 이후 대부분의 단원과 함께 붙잡혔다. 이 일로 1919년 7월 1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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