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根奭
根奭1898. 3. 23 ~ 1975. 7. 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논산군 강경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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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8년 3월 23일 충청남도 논산군(論山郡) 채운면(彩雲面) 심암리(深岩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0일 강경면(江景面) 옥녀봉(玉女峰)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논산군에서는 강경면을 중심으로 3월 10일 엄창섭(嚴昌燮)·고상준(高相俊)·추병갑(秋炳甲) 등이 주도한 제1차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이 만세시위에 호응하여 또래인 송재기(宋在紀)·이봉세(李鳳世)·이근오(李根五) 등과 함께 제2차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3월 16일 자신의 집에서 송재기·이봉세·이근오 등과 모여 3월 20일 강경면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계획하였다. 3월 17일과 18일 다시 자신의 집에 모여 이틀에 걸쳐 만세시위에 필요한 태극기 300여 개를 제작하였다. 논산군에서 강경면이 만세운동의 주요 장소가 된 것은 일제 강점기 물산의 집산지로서 상업이 발달하여 많은 상가가 밀집해 있었고, 이에 따라 장날에 많은 군중이 모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3월 20일 오전 10시경 동지들과 함께 강경시장 부근에 있는 옥녀봉에 올라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심암리와 화정리(花亭里) 등의 주민 70여 명을 규합하여 시위대를 형성하였다. 옥녀봉을 만세시위의 시작 장소로 선택한 것은 주변 일대가 금강변의 넓은 평야지대로 비록 낮은 야산이지만 사방을 관망할 수 있고, 또 주변에서 쉽게 주목할 수 있어 사람들에게 만세시위의 시작을 잘 알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옥녀봉에서 출발한 시위대와 함께 산을 내려와 강경면 웃시장(上市場)을 거쳐 서정(西町) 방면으로 행진하면서 만세시위가 확산되었다.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군중에게 나누어 주고, 만세를 연호하면서 시위를 진행하였다. 이때 시장 일대에서 많은 사람들이 호응하여 참여하였다. 이 일로 송재기·이봉세·이근오 등과 같이 일제 경찰에 붙잡혔고, 1919년 4월 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2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고, 같은 해 5월 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어 징역 10월을 다시 받았다. 재차 상고하였지만, 5월 29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이후 1923년 3월 채운면 심암리에서 주민들의 성금으로 설립된 채운학원(彩雲學院)과 1932년 3월 논산군 부적면(夫赤面) 신풍리(新豐里)에 설립된 신풍학원(新豊學院)에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해방 후에는 논산제일감리교회 장로로서 1948년 9월 29일 논산군 논산읍 화지동(花枝洞)에서 감리교 선교사 마로덕(馬路德, Luther O. McCutchen) 목사와 임준식 장로, 김창호·이보형 등 50여 명과 함께 논산 공민학교(公民學校) 창립을 결의하고, 1949년 10월 1일 개교하였다. 논산공민중학교가 1955년 2월 16일, 6개 학급의 기민중학교(基民中學校)로 설립 인가를 받자, 초대 교장으로 부임하였다. 논산시에서는 1985년 10월 ‘강경항일독립만세운동기념비’를 옥녀봉(논산시 강경읍 북옥리 114번지 일대, 현 옥녀봉공원)에 세워 강경지역 만세운동과 참가자들의 행적을 기리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경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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