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태
兪鎭台1880. 3. 18 ~ 1944. 3. 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1919년 공주군 신상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6) 1880년 3월 18일 충청남도 공주군(公州郡) 신하면(新下面, 현 공주시 유구읍) 조평리(造平里)에서 아버지 유치우(兪致友)와 어머니 정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기계(杞溪)이다. 한자가 다른 유진태(兪鎭泰)라는 이명이 있다. 1919년 3월 14일 오후 4시경 공주군 신상면(新上面) 유구(維鳩)시장에서 황병주(黃秉周)가 주도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천도교인 황병주는 『매일신보(每日申報)』를 통하여 천도교 교주인 손병희(孫秉熙)가 서울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된 사실을 알고, 신상면에서도 만세운동을 거행하기로 결심하였다. 황병주는 시장에서 군중 30여 명에게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도록 하였고, 모자를 벗어 흔들며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불렀다. 군중도 이에 호응하여 만세를 부르며 우(牛)시장으로 이동하였다. 이때 시위에 합세하여 만세를 부르며 행진하였다. 군중이 점차 늘어나자 유구경찰관주재소 일본 순사 다카야마(高山傳右衛門)가 해산을 종용하며 시위를 제지하였으나, 오히려 중국인 수술공(隨述孔)의 집 앞에 이르렀을 때 시위 군중은 500여 명이나 되었다. 상황이 긴급해지자 다카야마 순사는 순사보 박용진(朴龍珍)에게 명령하여 주모자인 황병주를 주재소로 연행하도록 하였다. 그러자 이승현(李升鉉)·황연성(黃璉性)·박준빈 등은 시장에 남아 있던 약 100여 명의 군중에게 “어찌하여 너희들은 가만히 보고만 있는가”라고 하면서 황병주를 구출하러 주재소로 가자고 시위대를 독려하였다. 주재소에 도착한 황연성은 다카야마 순사에게 황병주를 석방치 않으면 군중을 해산시키지 않겠다고 협박하였고, 박준빈은 “어째서 황병주를 석방치 않는가? 즉시 석방하라”라고 따지면서 다카야마 순사의 가슴을 내리쳤다. 이때 이우상·류석우·안만원(安萬元)·이정춘(李正春)·김상규(金相圭) 등과 함께 돌 등을 사용하여 주재소 창문과 유리창을 파괴하였다. 급보를 접한 공주경찰서원과 수비대원들이 출동하여 시위대를 해산시키고 주도자들을 체포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재판을 받은 사람만도 23명에 이르렀다. 1919년 6월 16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6월, 벌금 30원을 받았으며, 만일 벌금을 못 낼 경우에는 30일간 노역에 처하도록 하여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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