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봉
白仁鳳1887. 9. 8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7)
관련 사건
- · 구포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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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7) 1887년 9월 8일 경상남도 동래군(東萊郡) 사상면(沙上面) 삼락리(三樂里 현 부산광역시 사상구 삼락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던 중, 3월 29일 경상남도 동래군 구포면 구포시장에서 펼쳐진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중순에 경성의학전문학교(京城醫學專門學校)에 재학 중인 양봉근(楊奉根)이 구포면(龜浦面)의 서기書記 임봉래林鳳來에게 서울 등지에서 전개된 만세운동 소식을 전달하였다. 이에 임봉래는 윤경尹涇·류기호柳基護·김옥겸金玉兼 등과 논의하여, 3월 29일 구포시장의 장날을 이용해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3월 29일에 만세운동 주도 인물들은 미리 제작한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박덕홍(朴德弘) 등의 청년들에게 전달하여 주민들에게 배포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당일 정오 무렵, 구포시장에 모인 약 1,000여 명의 군중이 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장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자 일제 경찰이 진압을 위해 출동하였고, 김옥겸을 비롯한 11명을 현장에서 붙잡아 구포 경찰관 주재소에 구금하였다. 이에 항의하며 수감된 이들을 석방하라고 외치면서 1,200여 명의 시위대가 주재소로 나아갔다. 이때 윤장수(尹章守)·김달수(金達洙) 등과 함께 구금된 인사를 구출하기 위해 시위에 가담하였다. 군중들은 경찰을 향해 투석전을 벌이고, 주재소 건물과 집기를 파괴하는 등 물리력을 동반한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으나, 일제 경찰의 발포를 동반한 무자비한 진압에 결국 해산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시위 군중 9명이 부상을 당했고, 일제 경찰과 헌병 3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일로 붙잡혀 혹독한 조사를 받은 후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8월 26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그해 12월 29일 가출옥으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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