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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필

白光弼

1899. 5. 2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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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백광필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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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淸州)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청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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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조선국민자유단

포상 정보

  • · 애족장(201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8) 1899년 5월 2일 충청북도 청주군(淸州郡) 가좌골(加佐-, 현 청주시 상당구 용담동) 반송(般松) 마을에서 태어났다. 1901년 1월 2일생이라는 기록도 있다. 1919년 서울 송현동(松峴洞)에 거주하였으며, 조선국민자유단이라는 비밀결사 조직과 『자유민보』 발행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서가 발표되고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자 사립 중앙학교(中央學校) 4학년생 최석인(崔碩寅)·류연화(柳淵和) 등과 함께 독립 문제에 대해 여론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고 논의하였다. 서울 종로구(鍾路區) 훈정동(薰井洞)에서 조선국민자유단을 조직하고, “근래 조선인 지식인 중에 조선인에게 출판 및 언론의 자유를 주고 조선에 식민지라는 이름을 쓰지 않으며 대의사(代議士)를 일본 제국의회(帝國議會)에서 선출하도록 하고 헌병제도를 폐지할 것을 요구하여 이것이 채택되는 것으로 만족하려는 자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의 말에 현혹되지 말아야 하며, 단연코 이번 기회에 조선을 일본의 통치에서 벗어나 완전한 독립국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최후의 1인까지 분투할 각오를 해야만 한다”라는 경고 취지의 문안을 최석인과 협의하여 작성하였다. 이 내용이 담긴 전단 300매는 등사판으로 인쇄하여 조선국민자유단의 이름으로 동대문 주택가에 배포하였다. 그 이후 다시 최석인·류연화와 함께 『자유민보』라는 이름의 저작물을 출판하기로 논의하였다. 류연화에게 자금 30원을 받아 인쇄 준비를 하였고, 류연화는 논설을, 최석인은 기타 기사를 작성하기로 하였다. 이들은 4월 1일부터 중순까지 『자유민보』를 총 5호 발행하였다. 기사 내용은 “민족자결주의에 따라 조선은 독립하지 않으면 안된다”라는 내용으로 각 호마다 약 1,000매씩 등사판을 이용해 인쇄하였다. 『자유민보』는 주로 서울 광화문과 동대문 등지의 민가에 배포되었다. 이러한 활동을 벌이다가 일제 경찰에게 탐지되어 『자유민보』를 발행했다는 이유로 붙잡혔다. 1919년 5월 2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출판법과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7월 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항소가 기각되었고, 다시 고등법원에 상고하였다. 1919년 8월 28일 상고가 기각되어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고 1921년 2월 17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서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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