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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태

徐相台

1924. 2. 11 ~ 2012.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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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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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대구(大邱)일본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대구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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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흥맹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24년 2월 11일 경상북도 대구부(大邱府) 검단동(檢丹洞)에서 태어났다. 창씨명은 대성민조(大城敏照)이다. 9세 때 부친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1944년 3월 후쿠오카현(福岡縣) 기타규슈시(北九州市) 도바타구(戶畑區)에 있는 도바타중학(戶畑中學)을 졸업하였다. 이후 곧바로 대구의학전문학교(大邱醫學專門學校)에 입학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자, 일본으로 건너갔다. 1943년 9월경 가족이 모두 본적(本籍)을 일본으로 옮기려 했으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일제의 ‘내선일체(內鮮一體)’는 기만적인 슬로건임을 알게 되었다. 이때부터 민족의식을 갖게 되어 고민하던 중 우연히 중국 정치가 저우포하이(周佛海)가 지은 『삼민주의해설(三民主義解說)』을 읽은 후, 민족의 진정한 행복은 한국이 독립국가가 되는 길밖에 없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후 도바타고등소학교(戶畑高等小學校)를 졸업하고 공장에서 실험공(實驗工)으로 일하던 백천박순(白川博淳)과 함께 주로 그 지역 조선인 ‘이입노무자(移入勞務者)’들을 대상으로 항일비밀결사운동을 전개하고자 동지를 규합하였다. 1943년 11월 백천박순과 여러 차례 회합하여 “차별적 대우의 불합리성, 태평양전쟁에서 버마나 필리핀의 독립 문제가 언급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나라들보다 선진국인 한국의 독립은 당연한 것”이라는 내용 등으로 토론하였다. 이들은 애국에 열의가 있는 조선 청년들을 동지로 규합하여 독립의식을 앙양함과 동시에 그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하고 비밀결사 흥맹회(興氓會)를 조직하였다. 1944년 3월 중순에 대구의학전문학교에 입학시험을 치르기 위해 잠시 귀국하였을때 대원영길(大原榮吉)에게 흥맹회 가입을 권유하며 국내외에서 동지를 규합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이어가던 중 1944년 7월경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같은 해 10월 18일 후쿠오카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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