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원석
卞元石1888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4) 경상남도 거창군(居昌郡) 남상면(南上面) 월평리(月坪里) 출신이다. 1909년 당시 22세인 것으로 보아, 1888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으로 변원화(卞元和)를 사용하였다. 경남 지역에서 의병으로 활동하며 군자금 조달을 하였다. 대한제국 군대의 강제 해산으로 촉발된 1907년의 의병항쟁이 후기로 접어든 1909년 2월 거창과 삼가(三嘉) 출신의 전성구(全聖九) 등과 함께 의병대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이들은 대체로 동향의 교우 관계로 맺어져 있었으나 전성구가 의병대장의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의병 활동을 위한 군자금 마련을 위해 1909년 3월 25일 밤 10시 합천군(陜川郡) 사상면(砂上面) 화양동(華陽洞)의 부호 윤석우(尹錫佑)의 가택에서 지폐 25원과 8관의 엽전을 군자금으로 모집하였다. 같은 해 5월 18일에는 삼가군 고현면(古縣面) 장기동(場基洞, 현 합천군 삼가면 일부리)에서 김우준(金友俊) 등 3명이 시장(市場) 상황을 정탐하다가 상인들에게 구류되었다. 이에 나머지 동료들과 함께 시장에 방화하고 김우준 등을 구출하였다. 같은 해 6월 19일에는 해인사(海印寺) 인근에서 군자금 모집을 시도하였다. 의병활동 중에 남흥면(南興面) 국로소동(國老所洞)의 본가(本家)에 다녀가곤 하였는데, 1909년 8월 25일 귀가하는 정황을 탐지한 거창경찰서 소속 순사에게 붙잡혔다. 1910년 7월 29일 부산지방재판소 진주지부에서 이른바 강도방화죄로 징역 10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10년 9월 6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었다. 경성감옥에서 옥고를 겪다가 1914년 6월 12일 가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여염정⋮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