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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성오

邊聖五

1891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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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변성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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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묵동(墨洞)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서울특별시 묵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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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전성서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6) 서울 묵동(墨洞)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10년 당시 20세인 것으로 보아 1891년생으로 추정된다. 경기도 양주군(楊州郡) 백석면(白石面) 대야비(大野圮)에 거주하면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전성서(田聖西) 의병부대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던 중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07년 일제는 헤이그 특사사건을 비밀로 삼아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켰을 뿐만 아니라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의 체결로 한국의 내정까지 침범하여 한국군대해산을 강행하였다. 이때 의병에 참여하였다. 1909년 7월부터 8월 사이에 전성서 의병장의 의병부대에 들어가 활동을 전개하였다. 전성서는 대한제국 군대 특무정교였던 정용대(鄭用大) 의병장의 부하로서 경기도 양주군·포천군(抱川郡)·파주군(坡州郡) 일대에서 활약하던 의병장이었다. 1909년 7월부터 전성서 의병장을 따라 양주군 백석면·석적면(石積面)·광석면(廣石面) 등지에서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가 일본군에 붙잡혔다. 1910년 2월 21일에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로 징역 3년을 받았다. 1912년 3월 대사령에 의해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여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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