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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계련

承啓璉

1899. 1. 3 ~ 1961.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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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승계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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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정주(定州)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정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광한단
  • · 조선농민사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6) 1899년 1월 3일 평안북도 정주군(定州郡) 고안면(高安面) 안흥동(安興洞)에서 태어났다. 독립운동을 위한 군자금을 지원하였고, 정주에 설립된 오산학교(五山學校)를 유지하는데 큰 힘을 보탰다. 1920년 7월 중순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콴뎬현(寬甸縣) 화류두(火流頭)에 근거지를 두고 이시설(李時說)이 단장으로 있는 광한단(光韓團)의 단원 이명환(李明煥)·김관성(金觀成)·박민희(朴敏熙) 등이 정주군 신안면(新安面) 안운동(安雲洞) 자택으로 찾아오자 군자금으로 현금 700원을 제공하였다. 1922년 11월부터 남강(南岡) 이승훈(李昇薰) 선생을 도와 오산학교의 경영에 참여하여 1923년 2,000원을 기부하는 등 오산학교가 유지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1925년 1월 오산학교가 재단법인으로 전환되자 감사(監事)로 선출되었다. 한편 정주군 신암면에 학교가 없어 학생들이 20리(里)를 통학하며 공부하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지역유지인 김주현(金周鉉)·홍석표(洪錫杓) 등과 함께 보통학교기성회를 촉진하기 위한 후원회를 조직하기도 하였다. 1928년 11월 3일 붙잡혀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조사를 받던 중, 정주지방법원 검사분국에서 기소중지 처분을 받아 풀려났다. 만주 지역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가를 숨겨줬다는 이유로 예비검속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29년에는 여러 방면으로 활동하고 사재 출연으로 모은 약 7,000원으로 11월 중순 사설학원을 개원해, 무산아동의 주학부(晝學部)와 농민야학부(夜學部)를 개설·운영할 수 있도록 하였다. 1930년에는 조선농민사(朝鮮農民社)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31년 6월 21일 정주군 신안면 면협의원에 당선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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