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석우
宋錫禹미상 ~ 1921. 6. 17
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연통제 평아북도 독판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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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5) 자료의 한계로 출생일자와 출신지, 만주로 이주한 시기 등은 확인할 수 없다.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송석우(宋錫雨)를 사용하였다. 상하이(上海)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실시한 연통제에 따라 평안북도 독판부(督辦府) 벽동군감(碧潼郡監)으로서 활동하였다. 연통제는 1919년 5월 당시 임시정부 내무총장이었던 안창호(安昌浩)에 의해 추진된 지방 행정제도로, 국내 통치력을 장악하여 각종 법령·공문의 전파를 원활히 하고, 국내 여론, 병력, 군수품 등과 관련된 각종 정보를 정확히 조사하며, 임시정부에 대한 선전 활동을 전개하여 궁극적으로는 독립을 달성한다는 목적에 따라 실시되었다. 1919년 7월 10일 공포된 국무원령 제1호에 의하면 연통제는 각 지방을 12개 도로 나누며, 각 도에는 독판(督瓣) 1명, 참사(參事) 4명, 장서(掌書) 약간 명, 경감(警監) 2명, 기수(技手) 약간 명, 통역 약간 명을 두도록 규정하였다. 또한, 각 도에는 부(府)나 군(郡)을 두고, 부장(府長) 혹은 군감(郡監) 휘하에 참사 1명, 장서 약간 명, 경감 1명을 두었다. 1920년 7월 김석항(金碩伉)의 뒤를 이어 평안북도 독판부 벽동군감으로 임명되었다. 군감은 연통제의 조직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에 주로 지방 유지, 사립학교 교사, 교회 목사나 불교 승려들이 군감에 임명되었으며, 현직 군수가 군감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벽동군감으로서 국무원령 제1호에 규정된 대로 평안북도 독판의 지휘 감독에 따라 법령을 집행하고, 관내 행정사무를 처리하며, 부하의 관리를 지휘 감독하는 등의 의무를 수행하였으며, 동시에 상하이의 임시정부와 연락과 군자금 모금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일제는 임시정부의 기반인 연통제를 붕괴시키기 위해 관계자들을 색출하고 가혹한 탄압을 가하였다. 1920년 여름에는 의주군(義州郡) 통신원 양승업(梁承業)이 체포됨에 따라 평안북도의 연통제 조직이 일제에 발각되어 피신해야만 하였다. 이때 중국 콴뎬현(寬甸縣) 대류하(大流河)로 이동하였으나, 1921년 6월 17일 새벽 3시 콴뎬현에 잠행을 나와 있던 벽동경찰서 소속 일제 경관과 대치 끝에 임경식(林璟植)을 비롯한 서로군정서 의용대원 10명과 함께 전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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