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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원

宋祥元

1850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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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송상원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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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북 경성(鏡城)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북도 경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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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국민노인동맹단
  • · 성동무관학교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1) 함경북도 경성군(鏡城郡) 명간면(明間面) 산동리(山同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20년 당시 71세였던 것으로 보아 1850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송상원(宋尙元)을 사용하였다. 만주로 이주하여 중국 지린성(吉林省) 둥닝현(東寧縣) 소수분(小綏芬)에 거주하였으며, 대한국민노인동맹단(大韓國民老人同盟團) 등 단체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대한국민노인동맹단은 1919년 만세운동의 영향으로 1919년 3월 26일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톡 신한촌(新韓村)에서 단장 김치보(金致寶), 총무 김순악(金舜若), 의장 이일(李逸) 등의 임원 구성으로 조직되었으며, 창립취지서는 박은식(朴殷植)이 작성하였다. 회원은 320여 명으로 서울 종로에서 사이토(齋藤) 총독을 처단하려고 시도했던 강우규(姜宇奎) 등이 소속된 단체였다. 중국 북간도에서 대한국민노인동맹단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에 참여하던 중, 1920년 2월 말 70대의 노구를 이끌고 독립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서울 광화문에서 노인단이라 적힌 적기(赤旗)와 태극기를 소지한 채 “조선 민족은 분기(奮起)하여 일본 제국의 기반(羈絆)으로부터 벗어나 독립하여야만 한다”는 내용의 「통고문」을 배포하다가 붙잡혔다. 이로 인해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등으로 재판을 받은 결과 1920년 4월 2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제7조가 적용되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풀려난 후 다시 중국 지린성 둥닝현 소수분으로 돌아가 1923년 10월 중순 김좌진(金佐鎭)이 설립한 성동무관학교(成東武官學校) 내에 조직된 동우회(同友會)의 회장을 맡아 총무 강철현(姜鐵鉉)과 함께 회원 모집과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성동무관학교 내의 동우회는 생도 70여 명과 외부 인사 30여 명으로 출범했으며, 선전계(宣傳係)와 군자금 모연계장(募捐係長)을 맡은 한상열(韓相烈)이 무링현(穆陵縣) 지역에서, 오지범(吳之範)이 왕칭현(汪淸縣)·옌지현(延吉縣)·허룽현(和龍縣)·훈춘현(琿春縣) 지역에서 군자금 모집을 담당하였다. 1924년 8월 하순 영고탑(寧古塔)에서 열린 희성부(羲性府)의 간부회의에서 장관 이범윤(李範允), 부장 김규식(金奎植)과 더불어 지방조직특무위원장(地方組織特務委員長)에 선출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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