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송병걸

宋秉杰

1874 ~ 미상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송병걸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함남 함흥(咸興)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함흥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동성한족생계회
  • · 대한독립군비단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1) 함경남도 함흥(咸興)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74년생으로 추정된다. 만주로 건너 간 경위와 시기는 확인할 수 없으나, 1919년 만세운동 이전 만주로 건너가 서간도 창바이현(長白縣)에 거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1918년 3월 27일 동성한족생계회(東省韓族生計會) 장백현분회(長白縣分會) 설치 당시 조사원에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동성한족생계회는 만주지역에 거주하는 이주 한인의 생계를 돕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였다. 1910년 경술국치를 전후해 이주를 시작한 한인들의 삶을 걱정한 망명 민족운동지도자들은 1918년 1월초 한인의 생계를 지원해주길 바라는 청원서를 중국 측에 보냈다. 이에 중국 측의 긍정적인 답변이 있자, 같은 달 10일 수전(水田) 개간, 금융기관 설립, 한인의 법률적 문제 해소, 구휼사업, 교육사업, 신문 및 잡지를 발간하는 언론사업, 각자의 능력에 따른 농·상·공·광·임업의 참여와 지원 등을 이끌 수 있는 생계회를 만든 것이었다. 본회는 길림성성(吉林省城)에 설치되었고, 회장은 여준(呂準), 부회장은 김약연(金躍淵)이었으며, 총무·실업·조사·재무·문사(文事) 등의 부서가 만들어졌다. 설립 당시 만들어진 간장(簡章)에 한인이 많이 사는 중요 지방에 분회를 설치하도록 했는데, 장백현분회는 그에 의거해 만들어졌다. 장백현분회의 회장은 이청보(李淸浦), 부회장은 한석진(韓錫鎭)이었고 그 아래 총무·외교·조사·서무·재무·실업·회계·평의회 등의 부서가 있었는데, 조사장 밑의 조사원에 임명되어 창바이현 이주 한인의 생계를 위해 활동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한민족의 독립 의지가 확고해지자 서북간도에 많은 독립군단이 설립되었다. 1919년 5월경 창바이현에 설립된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도 그 중 하나였다. 1921년 8월경 창바이현 17도구(道溝) 대리치(大利峙)에 설치된 이 군비단의 제2구 지단장이 되어 활동하였다. 창바이현은 한국의 혜산과 마주하고 있었다. 게다가 백두산 자락이 뻗친 지역이기에 여러 개의 험준한 계곡을 가진 지형이었다. 따라서 적의 눈에 쉽게 띄지 않는 곳에 근거지를 가지고 있다가 신속히 국내로 진입해 유격전을 펼치기 수월한 지역이었다. 이러한 지역적 특색을 가졌기에 창바이현에는 여러 독립군단들이 근거지를 구축하고 있었고, 군비단도 마찬가지였다. 설립초기 이한평(李漢平, 이명:이태걸(李泰杰))을 단장으로 한 군비단은 8도구 독암리(獨岩里)에 본부를 두고, 8도구 남강성리(南江城里)를 비롯해 13·15·17·18도구 등의 지역에 통신사무국, 지단(支團) 또는 지부(支部)를 설치하였다. 자료의 한계로 설립 당시부터 군비단에 참여했는지는 알기 어려우나 동성한족생계회에서 활동하다가 군비단이 성립되자 참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14명의 부하들과 함께 활동했으므로 국내진입전 또는 만주 내에서 무장활동 등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