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문주
宋文胄1896 ~ 1921. 10. 16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서로군정서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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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평안북도 위원군(渭原郡) 출신이다. 『독립신문』 1922년 8월 29일자 기사에 따르면 1922년 사망 당시 26세인 것으로 보아 1896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송문주(宋文柱)와 송문증(宋文曾)을 사용하였다. 자료의 한계로 만주로 이주한 시기는 확인할 수 없다. 서간도 지역에서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소속 의용대(義勇隊) 대원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만주의 독립운동세력은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일환으로 한족회(韓族會)가 성립하였는데, 한족회는 1919년 4월 류허현(柳河縣)·환런현(桓仁縣)·지안현(集安縣)·하이룽현(海龍縣) 등지의 지도자들이 류허현 삼원보(三源堡)에 모여서 종래의 독립운동 단체인 부민단을 확대·개편하여 만든 대표적인 독립운동 단체였다. 한족회는 군사를 양성하기 위해 군정부(軍政府)를 성립하였는데, 이 무렵 상하이(上海)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성립되면서 군정부는 임시정부에 소속되어 서로군정서로 개편되었다. 서로군정서에서 활동을 시작한 시기는 확인할 수 없지만, 의용대 대원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 7월 14일에 군자금 모집하기 위해 다른 의용대 대원인 문학빈(文鶴彬)·하찬린(河贊麟) 등과 함께 평북 삭주(朔州)로 이동하였다. 같은 해 8월 14일에 콴뎬현(寬甸縣) 대황구(大黃溝)로 출장을 가던 중에 일본군의 사격에 부상을 당하였다. 어느 정도 완쾌한 후, 이듬해인 1921년 10월 16일 지안현 장항리(獐項里)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던 중에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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