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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현

孫基賢

1883. 8. 20 ~ 1942.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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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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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알아보는 인물 · 손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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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密陽)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밀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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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한교공회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6) 1883년 8월 20일 경상남도 밀양군(密陽郡) 산외면(山外面) 다죽리(茶竹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일직(一直)이다. 아버지는 1863년 무과에 급제한 후 선전관(宣傳官)을 지냈던 손규현(孫珪憲)이다. 집안은 7대조 손명대(孫命大) 이후 부친 대까지 무관을 지냈다. 선친이 모아놓은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가족과 함께 중국 간도지역으로 이주하였다. 이주 이후 봉천성(奉天省) 환인현(桓仁縣) 남관(南關)에 거주하였다. 1920년 5월 거주하던 환인현에서 한교공회(韓僑公會)에 가입하였다. 한교공회는 1919년 7월, 손극장(孫克章)·손병헌(孫炳憲)·독고욱(獨孤旭)·이천민(李天民)등이 주도하여 조직한 독립운동 단체였다. 환인현 마권자에 본구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각 지역에 지부가 설치되었다. 설립 이후 일제의 주요 기관을 습격하고, 친일파를 적발하는 활동을 펼쳐나갔다. 한교공회에 가입 이후 외교원으로 임명되었고 단체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다. 집은 독립군들의 회합 장소로 종종 이용되었으며, 아내는 독립군들이 편하게 논의할 수 있도록 편의를 봐주었고 식사를 대접했다고 한다. 한교공회 외교원으로써 활발하게 항일 활동을 하던 중, 안동현(安東縣)에 거주하던 일본영사관 헌병대에 붙잡혔다. 손기현의 둘째 아들에 의한 회고에 따르면 체포 당일 일제헌병대에서 집으로 찾아왔고 한국독립군을 보았는지에 대해 강압적으로 물었다고 한다. 이것을 부인하자 첫째 아들과 함께 잡혀갔으며, 헌병대에서 모진 고문을 받았다. 첫째 아들은 보름만에 풀려났으나, 본인은 그렇지 못했다. 이때 받은 고문으로 평생 고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헌병대에서 조사를 받은 후 신의주지방법원으로 이송되었다. 1920년 8월 19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1919년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옥고를 치른 뒤 출소하였으나 고문의 후유증과 옥중에서의 여독으로 고통 받다가, 1942년 4월 12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남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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