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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규환

宣奎煥

1901. 4. 24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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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선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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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영변(寧邊)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영변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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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중흥단

포상 정보

  • · 애국장(201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6) 1901년 4월 24일 평안북도 영변군(寧邊郡) 용산면(龍山面) 구장리(球場里)에서 태어났다. 1921년 중흥단(中興團)에 가입하여, 평북 개천군(价川郡)과 영변군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던 중 붙잡혀 옥고를 겪었다. 중흥단은 1920년 백인균(白寅均)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단체로, 독립중흥단(獨立中興團)이라고도 불렸다. 만주 통화현(通化縣) 칠도구(七道溝)에 본부를 두고 국내외를 오가며 군자금 모금활동을 전개하였다. 평양 한성상회 모자 제조소에서 일하던 중 1921년 (음)12월에 중흥단원 선경환(宣經煥)을 방문하러 갔다가, 대한독립중흥단 단장 백인균과 단원 최동운(崔東雲)을 만나 “태평양 회의가 끝나면 조선이 독립될 것이니 조선민족인 이상 독립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권유를 듣고 중흥단에 가입하였다. 이후 동료 중흥단원들과 함께 평북 개천군, 영변군 일대의 자산가들을 조사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여러 차례 전개하였다. 백인균과 최동운이 만주로, 선경환이 서울로 떠나자 모자 제조소에서의 업무를 계속하였다. 1922년 (음)2월 19일 백인균을 다시 만나 군자금을 전달받고 경관의 경계가 엄중하여 대량의 현금을 가지고 왕래하기 어려우니 잠시 보관하다가 전신으로 송금해 줄 것을 부탁받았다. 하지만 이 일이 영변경찰서 형사에게 발각되어 같은 달 27일에 붙잡혔으며, 조사 과정에서 혹독한 고문을 당하였다. 1922년 5월 22일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과 강도죄로 징역 7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8월 1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항소가 기각되어 재차 상고하였다. 그 해 10월 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다 1927년 7월 19일 풀려났다. 1928년 4월 3일 영변군 오리면(梧里面) 무동(舞洞)에서 김치원(金致源)에게 군자금을 요청하였고, 이튿날 용산면(龍山面) 송호리(松湖里) 한정건(韓廷健)의 집에 가서 군자금 61원을 모집하였다. 이 일로 다시 평양경찰서에 붙잡혔다. 1928년 6월 29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10년을 받았다. 판결이 내려지자 “징역은 얼마든지 시켜라. 그러나 나는 그대들의 법률을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항의하며 항소하였다. 같은 해 9월 26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7년을 받고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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