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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원심

白元心

1896. 7. 13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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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백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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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강계(江界)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강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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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국민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4) 1896년 7월 13일 평안북도 강계군(江界郡) 공북면(公北面)에서 태어났다. 활동 당시 백동호(白同浩)라는 이명을 사용하였다. 중국 만주의 랴오닝성(遼寧省) 진촨현(金川縣) 일대에서 거주하면서 국민부(國民府)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대 초반 만주의 한인사회를 기반으로 많은 독립운동 단체들이 조직되었고, 독립운동 세력을 규합하고자 여러 단체들은 통합을 선택하였다. 1929년 4월 1일 정의부(正義府)·신민부(新民府)·참의부(參議府) 대표들은 지린(吉林)에서 모여 통합에 대하여 비밀회의를 개최하고 국민부라는 통합기관 성립을 선포하였다. 같은 해 5월 말, 정의부 소속 의용군을 주축으로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을 개편하여 3부가 해체되고 실질적인 당·정·군 체계의 조직이 성립되었다. 국민부는 자치행정기관으로 조선혁명군은 교민 보호 및 무장투쟁의 수행 등을 임무로 삼았다. 1931년 10월 진촨현 제3중대장 심학산(沈學山)의 권유로 국민부에 가입하여 대원으로서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통신연락사무를 중심으로 일제 관헌에 대한 정찰을 하였다. 1932년 2월말 행적이 발각되어 1932년 2월 23일 하이룽현(海龍縣) 일본영사관 일제 경찰에게 붙잡혔다. 그 후 신의주경찰서로 압송되어 조사를 받고, 1933년 1월 23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재판이 열렸다. 1933년 1월 30일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과 살인미수죄 등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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