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병찬
方炳贊1890 ~ 1926. 11. 21
관련 단체
- · 참의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자료의 한계로 출신 지역은 확인할 수 없다. 1926년 사망 당시 36살이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1890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으로 방순찬을 사용하였다. 참의부(參議府)부대원으로, 일제 밀정 처단 활동을 하였다. 남만주에 위치했던 참의부는 국내와 가까운 압록강 건너편에 활동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국내 진격작전을 빈번하게 전개하였다. 참의부는 군사와 민정을 모두 총괄하는 단체였기에 산하 군대도 제1중대~제5중대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1924년 7월 24일 이의준(李義俊)·신용섭(申龍涉)·장운성(張雲成)·김창화(金昌化)·김택규(金澤奎)·박봉호(朴鳳浩)·유호정(劉虎正)·한맹호(韓孟浩) 등과 함께 평안북도 강계군(江界郡) 어뢰면(漁雷面) 종인동(從仁洞)에 출동하여 김은준(金殷俊)의 여인숙에 머물던 일제 밀정을 처단했다. 1925년 6월 조선총독부 경무국장 미쓰야 미야마쓰(三失宮松)과 펑톈군벌(奉天軍閥)인 장쭤린(張作霖)간 체결된 미쓰야 협정(三矢協定)에 근거하여, 중국 군경 및 관헌이 한국독립운동가를 일본영사관에 넘기고, 금전적 대가를 받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포상금을 노린 중국군에 의해 독립군 뿐만 아니라 일반 한인들도 많이 잡혀가 죽기도 하였다. 1926년 11월 21일, 제1중대 소속 하사 김성구(金成九) 등 11명으로 구성된 참의부 부대가 지안현(輯安縣) 보갑 제2구(保甲第)2(區) 호호구(葫芦溝)에서 한인의 집에 머물렀다. 그러던 중 밀고를 받은 중국 유수림자(楡樹林子) 보갑대(保甲隊) 대장 장궤이산(張奎山)이 부하 15명을 이끌고 참의부원들을 붙잡기 위해 출동하였다. 이에 참의부원들이 피침자(披砧子)쪽에 있던 산중으로 피신하여 보갑대와 총격전을 벌이던 과정에서 전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남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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