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雲龍
白雲1925. 2. 28 ~ 2006. 2. 2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한국광복군 제3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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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25년 2월 28일 평안북도 신의주부(新義州府) 미륵동(彌勒洞, 현 신의주시 오일동)에서 태어났다. 청소년기에 중국으로 건너가 산둥성(山東省) 칭다오(靑島)에서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1943년 중앙대학(中央大學) 정경과에서 수학하였다. 1944년 1월 학업을 중단하고 칭다오에 체류하던 중, 대한민국 임시정부 특파공작원 윤창호(尹昌浩)를 만나 공작원 임명장을 받고 일본군의 동정을 살피고 군자금을 조달하였다. 또한 한국인 교포들을 대상으로 동지를 모집하여 일본군 점령지역 밖으로 탈출시키는 임무를 맡았다. 일본 측에 발각되어 추적당하자 칭다오를 탈출하여 광복군 제3지대 본부가 있는 안후이성(安徽省) 푸양(阜陽)으로 이동하였다. 1944년 6월 중국 중앙군관학교 제10분교에 입학하여 6개월간 전시 초급장교 교육을 이수하고 같은 해 12월 수료하였다. 1944년 11월부터 김은석(金銀錫) 등과 광복군 제3지대 창설 기간 요원으로 활동하며, 지대 본부에서 신입 대원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쳤다. 당시 광복군 제3지대의 명칭은 징모 제6분처였으며, 1942년 2월에 이르기까지 임시정부 군무부가 광복군 병력 모집을 위해 창설한 징모분처 중 하나였다. 징모 제6분처는 푸양을 중심으로 쉬저우(徐州)·구이더(歸德)·난징(南京) 등 등지에서 공작원을 파견하고 초모활동을 전개하는데 주력하였다. 1945년 1월 재차 칭다오로 파견되어 현지 지하연락망에 지령문을 전달하고 유격대 활동을 보조했으며, 8명의 한국인을 탈출시켜 징모 제6분처에 입대시켰다. 그 해 3월에는 카이펑(開封) 지구 지하공작원으로 파견되어 일본군의 정보를 수집했다. 한편 징모 제6분처는 1945년 3월 광복군 제3지대로 편제되었고, 그 해 6월 지대 성립식을 가졌다. 1945년 5월에는 후베이성(湖北省) 우리뎬(五里店)에서 미군 항공대 지원을 위한 무선중계소 설치 임무를 맡았고, 김은석과 한커우(漢口)를 거점으로 중국군과 함께 통신망 구축 및 유격전 임무를 수행하였다. 광복 이후 장쑤성(江蘇省) 쉬저우(徐州)에서 중국군을 도와 중국 내 일본군의 무장 해제, 치안 유지, 한국인들의 신변 보호와 귀국 절차를 돕다가, 1946년 귀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조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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