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조
卞熺朝1895. 11. 2 ~ 1943. 8. 1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금산군 금산장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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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895년 11월 2일 전라북도 금산군(錦山郡) 금산면(錦山面, 현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중도리(中島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며, 3월 23일 금산군 금산장터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금산군 최초의 만세시위였던 금산장터 만세운동은 금산면의 청년대표였던 김용술(金用述)과 임승환(任勝煥)이 주도하였다. 이들은 금산장터의 장날인 1919년 3월 23일을 만세운동의 거사일로 결정하고, 함께할 동지들의 규합에 노력하였다. 김용술과 임승환으로부터 만세운동의 취지와 금산의 만세운동 계획에 동참할 것을 제안받고, 적극 찬성하여 구호열(具浩烈) 등과 함께 동지로 결합하였다. 이후 김용술·임승환 등과 협의하여 만세운동 계획을 추진하였다. 거사 당일인 3월 23일 금산군 각 면의 대표 20여 명이 모여 금산면 금산교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장터에서 장꾼들과 합세하여 시가지를 돌아 금산헌병분대까지 돌진하기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일제 헌병들의 경계가 극심하기 때문에 주도자들은 장꾼으로 가장하고 상호 연락하며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만세운동의 전날인 3월 22일 밤 김용술은 상옥리(上屋里) 소재 본인의 집에서 임승환과 함께 본인들의 명의로 주민들에게 배포하기 위해 일본의 식민통치를 규탄하는 동시에 3월 23일 오후 2시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자는 내용의 격문인 「금산경고(錦山警告)」를 작성하였다. 그리고 이 격문은 금산면 면서기 김종구(金鍾九)가 면사무소 등사판을 이용해 150여 장을 인쇄하였다. 구호열과 함께 인쇄된 격문의 배포를 담당하였다. 만세운동의 거사일인 3월 23일 아침부터 구호열과 금산장터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장꾼들에게 「금산경고」를 배포하며 만세운동의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같은 날 오후 2시경 김용술과 임승환 등 20여 명의 청년들은 장터의 우(牛) 시장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청년들이 외치는 ‘대한독립만세’의 우렁찬 울림에 장터에 나온 많은 주민들이 공감하여 속속 만세시위에 동참하기 시작하여 만세시위대는 순식간에 수천 명의 규모로 확대되었다. 이렇게 만세시위가 발생하자, 곧바로 금산헌병분대가 출동하여 즉시 해산을 명령하는 한편으로 만세운동의 주도자들을 체포하여 헌병분대로 연행하였다. 이때 김용술과 함께 일제 헌병들에게 붙잡혀 금산헌병분대로 끌려갔다. 일제 헌병대의 조사 과정에서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고 사실이 확인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8일 광주지방법원 금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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